저는 오늘 설교제목을 1+1+1=1로 했다. 여러분, 사실은 천국의 문은 이 수수께끼를 푸는 것과 관련이 되어있다. 어떤 분은 오늘 목사님이 무슨 이상한 얘기를 하시려나 생각할지 모르지만, 잘 생각해보면 이 문제는 신앙생활의 핵심적인 공식이다. 이 수수께끼는 빌립보서에 숨어있고, 여러분은 빌립보서에서 그 대답을 찾아내야 한다. 한가지 힌트를 드린다면 이 수수께끼는 ‘구원’이란 말과 관련이 되어있다. 그것은 무엇일까?
이 수수께끼를 풀기 위해서는 먼저 1+1+1+1이라는 공식의 각각의 1은 무엇을 나타내는가를 알아야 한다. 각각의 1에는 하나님 세가지 약속이 숨어있다.
첫 번째 1은 빌립보서 1:28-29에 숨어있다.
....이것이 그들에게는 멸망의 증거요 너희에게는 구원의 증거니 이는 하나님께로부터 난 것이라 그리스도를 위하여 너희에게 은혜를 주신 것은 다만 그를 믿을 뿐 아니라 또한 그를 위하여 고난도 받게 하려 하심이라
● 여기 28절에 ‘구원’이란 말이 나온다. 신앙의 핵심은 구원체험이다. 종종 교회생활을 오래하면서도 전혀 구원체험을 하지 못하는 사람들을 보게된다. 구원체험이 없으면 사실 하나님과 관련이 없다. 예수님은 이것을 거듭남이라고 말씀하셨는데, 거듭나지 않으면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다고 했다.
요3:3 예수께서 대답하여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거듭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를 볼 수 없느니라
요3:5 예수께서 대답하시되 진실로 진실로 네게 이르노니 사람이 물과 성령으로 나지 아니하면 하나님의 나라에 들어갈 수 없느니라
● 다시 말하면 내가 구원체험이 없다면 나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라는 것이다. 내가 교회를 얼마나 열심히 다니는가 상관없이, 내가 교회를 얼마나 오랫동안 다녔는지 상관없이, 내가 얼마나 교회에서 봉사했는지 상관없이 이 구원체험이 없이는 나는 하나님과 상관없는 사람이다. 묻습니다. 당신에게는 이 구원체험이 있었는가? 당신은 구원받으셨는가?
● 빌립보서의 주제는 기쁨이라고 했다. 그런데 인생은 고달프고 눈물나는 세상이다. 이민생활도, 유학생활도 만만치 않다. 어떻게 기쁘게 살 수 있는가? 환경만 바라보고는 절대로 기뻐할 수 없다. 사람만 쳐다보았다가는 여러분은 피눈물나는 실망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이 성경이 말하는 기쁨은 전혀 다른 기쁨이다. 이 기쁨은 우리가 하나님의 구원을 체험할 때 누릴 수 있는 기쁨이다. 구약의 다윗은 이것을 <구원의 즐거움>이라고 했다. 그러므로 여러분, 정말 하나님의 기쁨을 경험하고 싶은가? 그렇다면 우리에게는 구원체험이 먼저 있어야 한다.
● 바울은 빌립보서에서 구원이란 말을 자주 사용한다. 그렇다면 우리가 조금 전에 읽었던 빌립보서 1장에서 말하는 구원이란 무엇을 말하는가? 한마디로 말하면 1장에서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경험하는 것이다. 구원체험한다는 것은 다른 말로 은혜를 받는 것이다. 그런데 은혜란 무엇인가? 은혜란 말은 다른 말로 ‘선물’이란 말이다. 선물을 값없이 받는 것이다. 선물을 받기 위해서 돈을 내야한다면 더 이상 선물이 아니다. 신앙생활 가운데 첫 번째 깨달아야할 것은 구원은 선물이라는 것이다. 천국은 선물이다. 영생은 선물이다.
● 여기에 첫 번째 약속이 있다. 하나님은 구원을 선물로 주신다는 것이다. 영생은 선물로 받는 것이다. 우리가 노력해서 얻는 것이 아니다. 열심을 내서 받는 것이 아니다. 공로를 쌓아서 받는 것이 아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있는 그대로 사랑하시고, 받아주신다. 이것이 첫 번째 1이다. 잘아는 말씀이지만 다시한번 인용하고 싶다.
엡2:8-9 너희는 그 은혜에 의하여 믿음으로 말미암아 구원을 받았으니 이것은 너희에게서 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선물이라 행위에서 난 것이 아니니 이는 누구든지 자랑하지 못하게 함이라
두 번째 1은 빌립보서 2:12-13에 숨어있다.
그러므로 나의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가 나 있을 때뿐 아니라 더욱 지금 나 없을 때에도 항상 복종하여 두렵고 떨림으로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자기의 기쁘신 뜻을 위하여 너희에게 소원을 두고 행하게 하시나니.
● 여기서도 구원이란 말이 나온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 1장에서 구원이란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는 것이라 했다. 이 구원은 마치 어린아이가 새로 태어나는 출생과 같다. 어느 한 시점에서 내가 영적으로 태어나는 순간이 있다. 어떤 사람은 극적으로, 어떤 사람은 언제인지 모르지만 어느 한 시점에서 영적으로 태어나는 순간이 있다. 예수님의 십자가가 깨달아지고,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신 것이 바로 나를 위해서 죽으신 것이라는 것이 깨달아지는 순간이 있다. 내가 죄인인 것이 깨달아지고, 나 스스로 구원할 수 없다는 것이 깨달아지고, 그래서 예수님의 십자가를 의지하고 나오는 순간이 있다. 이것이 1장에서 말하는 구원이다.
● 그런데 2장에서는 구원은 조금더 폭넓은 뜻으로 쓰인다. 2장에서 “너희 구원을 이루라”는 말은 예수님을 다람아가는 것을 말한다. 내 말과 내 행동에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 나타날 때 구원이 이루어지는 것이다. 어느 한 순간에 예수님을 영접하고 받아들이는 구원은 반드시 내가 예수님을 닮아가는 구원과 연결되어야 한다. 이것이 연결되지 않으면 무엇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내가 구원받았다고 하는데, 나로 하여금 예수님을 닮아가는 방향에서 어떤 변화를 일으키지 않는다면 무언가 문제가 있는 것이다. 구원은 어느 한 시점에서 시작하는 것이다.
● 그러나 내가 받은 구원은 평생에 걸쳐 예수님을 닮게 한다. 그러므로 2장에서 말하는 구원은 평생에 걸쳐 이루어지는 것이다. 점진적인 과정이다. 오랫동안의 마라톤이다. 그래서 우리가 구원을 받았다는 말도 맞고, 우리가 구원을 이루어간다는 말도 맞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이고, 죄용서를 받아들이는 것은 한 순간에 받아들일 수 있다. 그러나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은 평생걸린다.
● 여기에 하나님의 약속이 있다. 이런 구원이 이루어지기 위해서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서 일해주실 것이라는 것이다.
<너희 구원을 이루라 너희 안에서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
● 사람은 변할 수 있을까? 아니 나는 변할 수 있을까? 종종 내 자신을 바라보면서 절망을 느낄 때가 있다. 나는 절대로 안변할 것 같은 생각이 든다. 그렇다. 나는 나 스스로를 변화시킬 수 없다. 내가 변할 수 있는 유일한 희망이 있다면 하나님께서 나를 만져주시면 나는 변할 수 있는 줄 믿는다. 그런데 13절에 어떤 말씀이 있는가? 하나님께서 우리 속에서 일하신다는 말씀이다. 하나님이 멀리 계신줄 알았는데 하나님은 내 속에 있으면서 나의 변화를 위해서 일하시고 있다는 말씀이다. 내 속에서 예수님의 모습이 나타나기까지 일하신다는 것이다. 이것이 복음이다. 이것이 희망이다. 그래서 우리는 나에 대해서 희망을 갖는다. 그리고 내 옆에 있는 사람들에 대해서도 희망을 갖는다.
● 여기에 대해서 짧은 영상물이 있는데, 함께 보자.
경매장에 낡은 바이올린이 있었다. 3불까지 부르는 사람이 있었고 더 이상은 없었다. 이때 한 노인이 나타나더니 바이올린의 먼지를 털고 보물을 다루듯 자기의 손수건을 꺼내 구석구석을 닦는다. 그리고 핸들을 조여 음정을 잡고 연주를 시작하였다. 그 아름다움은 천사의 음악같이 청중을 황홀하게 한다. 한 곡을 끝내고 노인은 감회깊은 음성으로 중얼거렸다. "잘 있었느냐 내 사랑하는 아들아. 40년만에 너를 만졌구나."하고는 다시 연주를 시작하였다.
경매는 갑자기 활기를 띠게 되고, 결국 이 바이올린이 3천불에 낙찰된다는 내용의 시이다.
무엇이 이 변화를 일으켰는가? 바로 바이올린의 거장의 손을 거쳤을 때 3달러짜리 인생이 3000불 짜리 인생이 될 수도 있고, 3천억불의 인생으로도 바뀔 수 있다. 그런데 그 거장이 우리 안에 계신다. 그리고 그 손으로 우리를 다듬기를 원하신다. 그 예수님의 손길 가운데 우리는 변할 수 있다.
세 번째 1은 빌립보서 3:20-21에 나와있다.
그러나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거기로부터 구원하는 자 곧 주 예수 그리스도를 기다리노니 그는 만물을 자기에게 복종하게 하실 수 있는 자의 역사로 우리의 낮은 몸을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 여기서도 구원이란 말이 나온다. 1장에서는 구원이란 인생의 어느 한 시점에서 하나님의 은혜를 받아들임으로 이루어질 것이라고 했다. 2장에서 구원이란 한 평생 걸려서 예수님을 닮아가는 것이라 했다. 그런데 3장에서는 구원이란 언젠가 예수께서 다시 오실 때 이루어질 일에 대해서 말하고 있다. 이때 우리에게 일어날 일이 21절에 나와있는데, 우리 몸이 예수님 몸처럼 변할 것이라고 한다. “우리 낮은 몸이 자기 영광의 몸의 형체와 같이 변하게 하시리라”. 이것은 이 땅에서 되어지는 일이 아니다. 미래에 되어질일이다. 예수님이 오실 때 이루어질 것이다.
● 여기서 우리 몸을 <낮은 몸>이라 했다. 이 땅에서 우리는 <낮은 몸>을 가지고 살아간다. 병에 걸리기도 하고, 시간이 지나가면 약해지기도 한다. 이 낮은 몸을 가지고 살아갈 때, 우리는 여전히 인간적인 고뇌를 할 수 밖에 없다. 우리는 이 땅을 살면서 여전히 질투하고 욕심내며, 여전히 부끄러운 모습으로 살아갈 수 밖에 없다. 우리가 비록 예수님을 믿어 구원받았고, 예수님이 내 안에 계시면서 그분을 닮아가도록 일하시고 있지만, 우리는 이 땅에서 완전한 변화를 경험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낮은 몸>의 신음소리를 낼 수 밖에 없다. 이 땅에서 완전한 천국을 경험하기는 어렵다. 여전히 내 속에 죄의 뿌리가 있는 것을 발견하게 된다. 여전히 죄악된 본성이 불뚝불뚝 튀어나오기도 한다.
● 이땅을 살면서 인간의 낮은 몸을 가지고 살기에 인간 사이에 소통되지 못하는 불통을 경험하기도 한다. 서로를 의심하고 오해하기도 하고, 서로에 대해서 한 순간에 마음이 돌아서기도 한다.
● 어느 노부부 이야기
어느 60이 넘은 노부부가 성격차이로 이혼을 했다. 이혼하는날 그 노부부는 이혼 처리를 부탁했던 변호사와 함께 저녁식사를 하게 되었다. 주문한 음식은 통닭이었다. 통닭이 나오자 할아버지는 마지막으로 자기가 좋아하는 날개 부위를 찢어 할머니에게 권했다. 함께한 변호사는 그 모습이 워낙 좋아 보여서 어쩌면 다시 화해할 수도 있겠구나 생각했다. 그런데 그 순간 할머니가 기분이 아주 상한 표정으로 화를 내며 말했다. “지난 30년 간 당신은 늘 그래왔어. 항상 자기 중심적으로만 생각하더니 이혼 하는 날까지도 이러다니, 난 다리 부위를 좋아한단 말이야”
할머니의 그런 반응을 보며 할아버지가 말했다. “ 날개는 내가 제일 좋아하는 부위야. 나는 내가 먹고 싶은 부위를 삼 십 년간 꾹 참고 항상 당신에게 먼저 건네준 건데... 어떻게 그렇게 말할 수가 있어. 이혼 하는 날까지...?”
화가 난 노부부는 서로 씩씩대며 그 자리를 박차고 일어나 각자의 집으로 가버렸다. 집에 도착한 할아버지는 자꾸 할머니가 했던 말이 생각났다. ‘정말 나는 한번도 아내에게 무슨 부위를 먹고 싶은가 물어본 적이 없었구나. 그저 내가 좋아하는 부위를 주면 좋아하겠거니 생각했지, 내가 잘못한 일이었던 것 같아. . 나는 여전히 아내를 사랑하는데.’ 이렇게 생각한 할아버지는 할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 핸드폰에 찍힌 번호를 보고 할아버지가 건 전화임을 안 할머니는 전화를 받고 싶지 않았다. 그러기를 서너 차례 할머니는 아예 배터리를 빼버렸다.
다음 날 아침 일찍 잠이 깬 할머니는 이런 생각이 들었다. “그러고 보니 나도 지난 삼 십 년 동안 남편이 날개 부위를 좋아하는 줄 몰랐구나, 자기가 좋아하는 부위를 나에게 먼저 준건데, 그 마음을 모르고 내가 화만 냈으니 얼마나 섭섭했을까? 아직 사랑하는 마음 그대로인데”
이렇게 생각한 할머니는 할아버지에게 전화를 했다. 그렇지만 할아버지는 전화를 받지 않았다. 내가 전화를 안받아서 화가 났나 하며 생각하고 있는데 낯선 전화가 한 통 걸려왔다. “할아버지가 조금 전에 돌아가셨습니다.”
할아버지 집으로 달려간 할머니는 핸드폰을 꼭 잡고 죽어있는 남편을 보았다. 그 핸드폰에는 남편이 마지막으로 자신에게 보내려고 찍어둔 문자 메시지가 있었다. ‘ 미안해’ 사랑해‘
● 이것이 이 땅을 살면서 우리가 경험할 수 밖에 없는 인간의 한계, 인생의 한계이다. 결혼을 시작할 때에 우리는 얼마나 많은 꿈을 가지고 시작하는가? 서로 사랑하기 때문에 무엇이라도 다 감당할 수 있을 것 같았다. 그런데 인간의 낮은 몸을 가지고 살아가는 동안, 우리는 인간의 어쩔 수 없는 한계를 경험하게 된다.
● 그러나 약속이 있다. 언젠가 예수님이 다시 오실 것이다. 그리고 예수님이 오시는 순간 우리 몸은 이 땅의 몸이 아니라 천국의 몸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영광스러운 몸으로 바뀌게 될 것이다. 그 때에는 더 이상 조그마한 일로 오해하는 일이 없을 것이다. 서로 소통되지 못하는 인간의 모습을 뛰어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