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2. 28.
2008. 12. 20.
눅1:46-56 성탄시즌에 기억해야할 단어
교회에서의 주보광고들을 보면 가끔 엽기적인 광고들이 많습니다. 이런 광고가 있었습니다 :
• 금일 당회장님의 고별 설교가 있은 후 성가대의 특별 찬양이 있겠습니다. 찬양 곡명은 "기뻐 뛰며 노래하라"입니다.
• 다음주에 있을 예정이던 "평화와 화합을 위한 기도회"는 회원들의 의견 충돌로 인하여 취소되었습니다.
• 오늘 아침 갑자기 박XX 장로님의 소천 소식을 들었습니다. 다같이 유족을 위로 해 주시기 바랍니다. 그럼 찬송가 XXX장 "이런 기쁨 또 어디 있을까"를 부르시겠습니다.
• 다음 주에는 소프라노 이XX 집사의 특송이 있겠습니다. 그 후 목사님께서 "견딜 수 없이 괴로운 경험"이란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시겠습니다.
• 이번 주일 1부 예배 설교 제목은 "물 위를 걸으신 예수님" 이고, 2부예배 설교 제목은 "예수님을 찾아서"입니다.
• 다음 주에는 여선교회 주최로 각 가정에서 필요없는 물건들을 가져와 싸게 판매하는 행사를 갖도록 하겠습니다. 잊지마시고 남편들을 꼭 데리고 나오시기 바랍니다.
이제 성탄절입니다. 오늘 우리가 읽은 본문은 소위 “마리아의 찬가”라고 알려진 찬양이요 노래입니다. 그러나 이 성탄의 노래는 사실 엽기적일 만큼 부담스러운 상황에서 불러진 노래라는 사실을 아십니까?
어느날 천사 가브리엘이 와서 구세주 예수가 마리아의 몸을 통해서 이 땅에 오시게 될 것을 예고합니다. 당시 십대의 소녀였던 마리아는 뜻하지 않은 예수의 임신을 두고 혼란에 빠집니다. 사람들의 이목도 문제지만, 가장 두려웠던 것은 결혼을 앞둔 요셉과의 관계였습니다. 이것을 무슨 수로 요셉에게 이해시킬 수 있단 말인가? 고민하다가 마침 친척 엘리사벳이 생각이 났습니다. 엘리사벳은 아이를 통 못났다가 기적적으로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기 때문에 엘리사벳을 만나면 뭔가 답이 있을 것 같아 엘리사벳을 찾아갑니다. 사실 엘리사벳도 너무 늦은 나이에 아이를 임신했기 때문에 마리아가 찾아가기까지 숨어있었습니다. 마리아는 천사를 통해서 친척 엘리사벳의 임신사실을 알고는 그를 찾아갑니다.
마리아에게 필요한 것은 더 큰 확신이었던 것 같습니다. 천사가 찾아와서 메시지를 전해주고 갔지만, 마리아는 혼란스러웠어요. 불안했습니다. 그런데 엘리사벳을 만나자, 아무 얘기도 꺼내기도 전에 마리아의 문안인사를 듣자마자 이렇게 이야기합니다.
• 눅1:41-42 엘리사벳이 마리아의 문안함을 들으매 아이가 복중에서 뛰노는지라 엘리사벳이 성령의 충만함을 입어 큰 소리로 불러 가로되 여자 중에 네가 복이 있으며 네 태중의 아이도 복이 있도다
이것은 마리아에게 큰 확신이 되었습니다. 하나님이 천사의 입을 통해서 소식을 알려주셨고, 엘리사벳을 통해서 확신을 주셨습니다. 드디어 확신에 이르게 된 마리아는 하나님을 찬양하며 노래합니다. 그것이 오늘 우리가 읽은 누가복음 1:46이하의 노래내용입니다.
마리아는 드디어 불안을 떨치고 자기에게 이루어진 사실에 대해서 기쁨으로 노래하기 시작합니다. 분명 예수 임신은 결혼하지 않은 십대소녀였던 마리아에게 부담스러웠을 것입니다. 그러나 자신이 모시게 된 예수가 하나님의 아들 구세주 예수라는 사실에 그는 오히려 기뻐하며 찬양하는 자리에 이르게되었습니다.
사실은 우리가 예수님을 영접하는 것도 비슷한 사건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믿는다는 것은 성경에서는 “예수를 영접하는 것이다” ‘예수를 마음에 모시는 것이다’라고 설명합니다. 그런데 예수를 우리 마음에 모시고 산다는 것은 일면 매우 부담스러운 것입니다. 직장에서는 내가 예수장이가 되었다고 놀림당할 수도 있습니다. 친구들과 이런저런 얘기를 하다가 교회에 다닌다는 사실을 말하면 갑자기 분위기에 찬물을 끼얹는 것 같은 그런 느낌을 줄 수 도 있습니다. 마리아의 부담은 사실 우리도 안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다른 한편에서 생각해보면 우리가 예수를 모시고 산다는 것이 얼마나 영광스러운 일입니까? 이 세상의 창조주되신 하나님을 모시고 산다는 것은 축복입니다. 마리아도 그런 심정이었습니다. 성경을 통해서 예언된 그 예수님이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몸을 통해서 태어나신다는 것을 생각할 때 너무나 감사했습니다. 그래서 노래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이 마리아의 찬가에서 우리의 성탄시즌에 꼭 기억해야할 한 단어를 만나게 됩니다. 그 단어는 바로 compassion이라는 단어, 긍휼이라는 단어입니다.
• 눅1:50 긍휼하심이 두려워하는 자에게 대대로 이르는도다
• 눅1:54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마리아는 자기에게 되어진 상황을 생각하면서 ‘긍휼’이라는 단어를 생각했습니다. 긍휼이란 말은 원래 “어머니의 모태, 자궁”을 뜻하는 <라함>단어입니다. 어머니가 품지않고 있으면 죽어버릴 수 밖에 없는 것이 어린 생명입니다. 제가 학교다닐 때 한번은 낙태에 대해서 조사한 적이 있습니다. 생후 2주부터 뚜렷이 완벽한 인간의 발모양을 하고 있는 사진도 보았습니다. 동영상으로 본능적으로 낙태기구를 피해다니는 어린 생명의 움직임도 보았습니다. 어머니가 모태에서 품지않으면 죽게되는 것이 태아의 모습입니다.
마리아는 어린 생명의 잉태에서 자연스럽게 긍휼의 하나님을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자기가 예수를 잉태하고 있는 것만 생각하고 있었는데, 더 큰 사랑으로 우리를 품고 있는 하나님의 모태를 생각하게 되었습니다. 하나님 앞에서 어린 생명일 수 밖에 없는 우리 인간들, 하나님이 품지 않으면 하루도 생존할 수 없는 것이 우리들인데, 우리들은 우리를 품고 있는 하나님의 품을 잊어버릴 때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 시대에 우리 각 사람이나, 우리 민족에게 가장 필요한 것이 있다면 바로 이 긍휼이라고 믿습니다. 첫 번째 크리스마스 때에 마리아는 “긍휼”이라는 단어를 기억했습니다. 그렇다면 본문에서 하나님의 긍휼하심은 어떻게 나타나고 있습니까?
첫째로 작은 자들을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오늘 본문을 보시면 예수님을 잉태하는 과정에서 마리아는 어떻게 느끼고 있었는지 두 개의 단어를 통해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하나는 48절의 <그 계집 종의 비천함>이라는 단어이고, 다른 하나는 50절의 <두려워하는 자>라는 단어입니다. 이것은 바로 마리아가 스스로 느끼고 있었던 생각들입니다.
비천하다는 것은 사회적 신분을 나타내는 말입니다. 마리아는 사회적으로 내세울 것이 없는 처지에 있었습니다. 당시에 가장 각광받는 곳이 예루살렘이라면 나사렛 동네는 상대적으로 천대받고 멸시받는 곳이었습니다. 예수님 당시 사람들이 예수님을 깎아내리는 말 중에 하나는 바로 “나사렛 예수”라는 말입니다. 이 말은 쉽게 말하자면 시골띠기 예수라는 말입니다. 나사렛 출신 마리아와 요셉은 내세울 것이 아무 것도 없는 시골 사람들이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도시의 세련된 수 많은 여인들을 제쳐두고 시골 출신의 나사렛 동네의 마리아에게 예수님이 임하셨다는 것은 하나님의 긍휼의 마음을 다시 생각나게 하십니다.
또 하나, 마리아는 두려워하고 있었습니다.
여러분 지금 이 마리아가 임신을 했잖아요. 이것은 스캔달입니다. 지금도 스캔달일수 있는 사건인데 얼마나 봉건적인 그 당시 사회 구조 속에서 결혼하지 않은 처녀가 잉태했다는 사실은 얼마나 커다란 스캔들이였을까요? 이것은 단순한 스캔달이 아니에요. 죽음을 각오해야 하는 사건이였습니다. 그 당시 이런 어린 소녀가 임신을 하게 되면은 그 소녀를 죽여도 그 사회는 무관했습니다. 얼마나 두려움이 컸을까요?
이것 때문에 내가 당해야 할 수모? 사람들에게 받아야할 손가락질? 그 혐오와 그리고 수많은 그 비방의 말들? 그리고 심지어는 목숨까지 어쩌면 잃어야하는 이런 상황 속에서 이 소녀가 겪고 있었든,그 마음에 내제하고 있었든 엄청난 두려움을 생각해 보세요. 그런데 이러한 비천함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두려움을 안고 있었음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이 소녀에게 다가오셨습니다. 그리고 어떻게 말씀하십니까?
우리가 누가복음 1장을 보시면 마리아가 잉태를 하자 마자 두려움 속에 사로잡힌 여인에게 하나님께서는 천사를 보내십니다. 그리고 뭐라고 말씀하십니까?
• 눅1:30 “천사가 일러 가로되 마리아여 무서워 말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제일성이, 무서워말라, 두려워말라 두려워하지 말아라, 그래서 말씀하시기를 네가 하나님께 은혜를 얻었느니라. 이것은 네가 두려워해야 할 사건이 아니고 부끄러워할 사건도 아니고, 이것은 네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거야. 너는 구세주 메시야를 낳을 꺼야.
나 같은 계집종을 주께서 찾아오시고 그리고 나를 쓰시겠다고, 이것은 결코 두려워하거나 부끄러워할 사건이 아니라고 천사를 통해서 하나님 자신이 다가오시고 그 마음을 만져주시고, 그 메세지를 주시는 그 순간 여러분 생각해 보세요. 마리아는 무얼 느꼈을까요? 하나님이 정녕 나를 얼마나 긍휼히 여겨주셨는지.
하나님은 작은 자를 품어주시는 긍휼의 하나님닙니다. 낮은 자를 품어주시는 긍휼의 하나님입니다. 세상에서는 무가치해보이는 사람들을 가장 귀하게 바꾸어놓으시기를 기뻐하십니다. 여러분의 상황 때문에 용기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 신분은 이러하니까? 내 학력은 이러하니까? 내 실력은 이러하니까?.... 이런 것들 때문에 삶의 용기를 잃어버리고 있지는 않나요? 그렇다면 긍휼의 하나님을 만나십시오. 하나님은 지극히 작은 자들, 낮은 자들을 가까이 하시는 하나님입니다.
여러분, 혹시 두려워하지 않나요? 앞이 잘 안보이는 상황 때문에 불안해 하지않습니까? 마리아도 두려워했습니다. 그러나 이런 두려움속에 있는 우리들을 그대로 품어주시는 것이 바로 하나님의 품입니다.
두 번째로, 등을 돌린 자들을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이 하나님의 긍휼은 마리아라는 한 개인만 품어주시는 것이 아닙니다. 본문을 보니까 하나님께 끊임없이 등을 돌린 이스라엘도 품어주셨다는 것을 노래하고 있습니다.
• 눅가복음 1: 54-55. “그 종 이스라엘을 도우사 긍휼히 여기시고 기억하시되 우리 조상에게 말씀하신 것과 같이 아브라함과 및 그 자손에게 영원히 하시리로다 하니라”
이스라엘은 구약성경시대에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민족이었습니다. 그것은 다른 민족들을 배제하자는 것이 아니라, 이스라엘을 선택해서 모든 민족에게 하나님을 전하는 선교사적 민족으로 이스라엘을 선택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백성으로 선택된 이스라엘은 자기 사명을 망각하고 끊임없이 하나님께 등을 돌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을 섬기기 보다는 다른 것들을 섬겼습니다. 때로는 바벨론, 헬라, 로마의 통치를 받게끔 했음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습니다. 그것이 이스라엘입니다. 그런데, 마리아가 노래하는 것은 이런 이스라엘임에도 불구하고, 하나님께서는 이스라엘과의 약속 때문에 이스라엘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드디어 그 약속대로 예수님이 이 땅에 오셨습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긍휼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긍휼은 끊임없이 등을 돌리는 우리들을 여전히 품고 계시는 긍휼입니다.
그리고 이것은 우리와 하나님의 얘기이기도 합니다. 우리들은 어떻습니까? 기회만 있으면 하나님에게서 멀어지는 것이 우리들의 모습아닙니까? 우리가 힘들고 어려울 때는 하나님을 찾습니다. 간절히 찾고 기도합니다. 그러나 우리가 조금만 살만하면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 우리네 인간들의 습성입니다. 마치 우리들은 건망증 환자와 같습니다.
수년전 치매로 고생하는 아내를 둔 남편 위스컨신주의 Mr.Stillwater씨의 이야기가 Moody Monthly라는 잡지에 실린 일이 있었습니다. 아내를 요양원에 맡긴 것이 마음에 걸린 남편은 하루를 마다 않고 거의 매일 저녁 요양원에 들려 한 두시간을 곁에 앉아 시간을 보내곤 했다고 합니다. 그리고 요양원을 찾을때는 늘 아내가 좋아하는 아이스크림을 사들고 갔다고 합니다. 하루는 자녀들이 함께 와서 어머니에게 아버지를 가르키며 이분이 누구냐고 묻자 남편을 몰라보는 아내는 “아이스크림 사다주는 좋은 아저씨라”고 대답합니다. 하루는 크리스마스가 가까운 어느날 남편이 아내옆에 앉아 “내가 좋으냐”고 묻자 “아이스크림 사다 주니까 좋아”하고 대답했다고 합니다. 그러자 남편은 기다렸듯이 “그러면 나하고 결혼하자”고 하자 한참 무엇인가를 생각하는듯한 표정을 짓고 있다가 “아이스크림 계속 사다주면 그렇게 하겠다”고 대답하더랍니다. 남편은 요양원에서 봉사하시는 목사님께 특별한 도움을 요청하고 자녀들 그리고 요양원 식구들이 모인 자리에서 성탄절 오후 조촐한 결혼식을 거행했다고 합니다. 주례가 치매걸린 아내에게 묻습니다. “옆에 있는 이분을 남편으로 맞이하시겠습니까?”고 아내는 또박 또박 “예”하고 대답합니다. 남편은 주례의 허락을 받아 결혼식에 참석한 하객들에게 인사 시간을 갖고 준비해온 메모지를 읽어내려 갔다고 합니다.
“오늘 저희들의 결혼식에 참여해주신 여러분께 감사를 드립니다. 제가 저의 아내와 이런 번거로운 결혼식을 다시 준비한 것은 단 한번이라도 제 아내에게 ‘사랑하는 남편’소리를 듣고 싶었기 때문입니다. 내일 다시 제 아내가 저를 기억 못해도 저는 오늘만이라도 저의 사랑을 되찾고 싶었습니다. 성탄절은 하나님이 저희들에게 예수님을 선물로 주신 날입니다. 이날 저는 저의 아내를 선물로 받고 싶었습니다. 그리고 제 자신도 저의 아내에게 오늘 하루라도 다시 한번 남편이라고 부를수 있는 존재가 되어주고 싶었습니다. 중요한 것은 결혼식이 아니라 사랑을 받고 사랑을 주는 오늘을 사는 것이라고 믿습니다. 저희에게 이 사랑이 가능하도록 도와주신 여러분께 감사드립니다. 오늘 성탄절 우리 부부는 고귀한 사랑의 선물을 받았습니다.” 놀라운 사실은 이 분의 아내는 치매가 치유되지 못한채로 약 6년을 더 살았는데 그러나 한가지 자기 남편을 남편으로 부르며 살았다는 것입니다. 이 남편은 아내의 장례식에서 다시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이것으로 족합니다. 제 아내가 요양원 결혼식후 적어도 저를 남편이라고 불러준것-그것은 크리스마스의 기적이었고 사랑의 기적이었습니다. 남은 저의 인생--사랑의 빚을 갚기 위해 제 아내보다 더 외롭고 아픈 이웃들을 사랑하며 살겠습니다.”
셋째로 우리와 함께하는 하나님의 긍휼입니다.
천사 가브리엘이 처음 마리아에게 잉태사실을 알렸을 때에, 아이의 이름을 두 개 알려주셨습니다.
• 마태복음 1:21 아들을 낳으리니 이름을 예수라 하라 이는 그가 자기 백성을 저희 죄에서 구원할 자이심이라하니라
• 마태복음 1:23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 이름은 임마누엘이라 하리라 하셨으니 이를 번역 한즉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계시다 함이라
먼저 예수란 뜻은 사람을 죄에서 구원한다는 뜻입니다. 임마누엘이란 뜻은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인간이 되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뜻입니다. 정리하자면, 하나님이신 예수님이 구세주가 되어 우리와 함께 계신다는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의 ‘긍휼’이란 책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어떤 곳에 ‘바보들의 마을’이 있었는데 이 마을 한 복판 밀밭에는 수박들이 자라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마을 사람들은 그 수박들을 괴물로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가지고 아무도 그 밭에 접근하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한 여행자가 이 마을을 지나다가 이 광경을 보고 기가 막혀 내가 이 어리석은 사람들을 교정하리라고 마음먹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이 미련한 사람들아 나를 보라”고 외치며 용감하게 밀밭으로 돌진하여 수박을 쪼개 먹어 보이며 “나를 따르라”고 소리쳤습니다. 그러나 마을 사람들은 저 괴물까지 무참하게 살해한 자가 우리까지 살해할지 모른다고 생각하여 건초 갈퀴를 가지고 그에게 덤벼들어 그를 마을 밖으로 쫓아냅니다. 그러나 또 한 여행자가 이 마을에 들어서 이런 마을 사람들을 긍휼히 여긴 그는 시간을 두고 인내하며 마을 사람들과 같이 살면서 설득하고 가르쳐 마침내 그들 자신의 손으로 이 수박을 먹게 한 것입니다. 헨리 나우웬은 이것이 바로 긍휼의 예수님이라는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어리석고 죄인될 수 밖에 없습니다. 우리의 모습으로는 하나님께 도달할 수 없습니다. 그런데 구세주 예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다. 그분은 우리와 함께 사셨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시험을 당하셨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그도 함께 겪으셨습니다. 생각하자면 예수님께서는 그럴 이유가 없었는데 예수님께서는 그렇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신 그분이 인간이 되실 이유가 없는데 우리의 죄를 용서하고 구원하시기 위해서 일부러 인간이 되셨습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그리고 지금 우리들의 모습을 생각해 보십시오. 우리 안에는 너무나 가시 같은 것들이 많습니다. 죄이니된 못된 습성들이 너무나 많습니다. 사람들은 우리에게 와서 쉼을 얻기 보다는 상처받고 나만 만나면 힘들어할 수도 있습니다. 그것이 죄인된 우리들의 현주소입니다. 그런데 성탄은 임마누엘 예수님을 생각나게 합니다. 이렇게 모나고 가시가 많은 우리들과 함께 하시기 위해서 예수님께서 오신 것입니다. 이것이 긍휼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을 수 있는 것은 이런 하나님의 긍휼하심 때문입니다.
• 에베소서 2장4절: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을 인하여”
• 벧후1:4 "찬송하리로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의 아버지 하나님이 그 많으신긍휼대로 예수 그리스도의 죽은 자 가운데서 부활하심으로 말미암아 우리를 거듭나게 하사 산 소망이 있게 하시며"
긍휼에 풍성하신 하나님, 우리를 그대로 버려두지 않고, 우리를 사랑하신 그 큰 사랑 때문에 예수그리스도가 주어졌고 또 우리가 그를 믿으므로 구원 받아 하나님의 자녀가 될 수가 있었다! 이것이 얼마나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요 그리고 하나님의 놀라운 긍휼인지요.
여러분과 저가 구원 받은 구원사건이 하나님의 긍휼때문이라고 믿으십니까? 그렇게 믿으세요?
그렇다면 죄인된 우리 인생이 하나님께 기댈 수 있는 것은 단 한가지입니다. 바로 긍휼의 하나님입니다.
16세기에 폴란드의 유명한 천문학자 코페르니쿠스라고 있습니다. 여러분 아시는 분입니다. 그가 세상을 떠날 때 자기의 묘비를 자기 자신이 썼습니다. 묘비에 뭐라고 썼느냐구요? "하나님이여, 나는 바울이 가졌던 특권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베드로에게 주셨던 능력을 구하지도 않습니다. 다만 예수님 십자가 지실 때 옆에 있었던 강도에게 베푸신 그 긍휼을 구할 뿐입니다." 여러분은 무엇을 구하고 있습니까? 그저 십자가 옆에 있던 강도에게 베푸신 그 긍휼을 주여 나에게 베푸시옵소서. 무슨 말입니까? 나는 저 강도 같은 사람입니다. 이것이 그의 진실한 마지막 유언적인 고백이었습니다. 여기에 귀중한 복음이 있습니다
사랑하시는 여러분, 이 성탄의 시즌에 우리가 기억해야할 단어는 긍휼입니다. 작은 자들을 품어주시는 긍휼의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떠한 자라도 용납하시고 사랑해주십니다. 등을 돌린 자라도 품어주시고, 인내하시는 하나님을 찬양하십시오. 여전히 우리를 포기하지 않고 사랑해주시는 그분을 찬양하십시오. 그리고 죄인된 우리들에게 임마누엘 함께 하시며, 우리 삶에 함께 하시는 긍휼의 예수님을 생각하십시오.
2008. 12. 15.
2008. 12. 7.
2008. 11. 29.
눅17:11-19 그래도 감사해야할 이유
■ 서론
• 한 크리스챤 작가요 심리학자가 다음과 같은 권두언으로 자신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나의 사무실 스태프들의 월급을 지불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내는 최근 오른쪽 팔꿈치에 혹이 만져져서 MRI사진을 찍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내 캐롤은 또한 홀몬 불균형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아직 효율적인 치료책을 못 찾고 있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집안 정리나 청소할 시간이 없어 언제 시간을 내어 산만한 집안 살림을 정리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미국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너무 맘에 들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물론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하여 ‘너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씀을 생각할 때 마다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제 자신이 더욱 염려가 됩니다. 저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제 자신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증세가 어떻게 내 관절을 아프게 하는지, 어떻게 내 침을 마르게 하는지, 어떻게 내 손바닥에 땀이 나게 하는지, 어떻게 호흡곤란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소화불량과 위경련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우울증을 유발시키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나의 아내는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너무나 완벽하고 강력한 치료책을 찾아냈습니다. 이 치료제의 효율성은 거의 기적적인 것입니다. 저와 저의 아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치료제의 효율성을 임상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치료제는 식전이나 식후에 복용하시면 됩니다. 호흡곤란을 느낄 때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때 수시로 복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과 함께 드실 수도 있고 물 없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처방 천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치료제는 절대로 부작용이 없고 안전합니다. 더욱이 이 치료제는 무료입니다. 이 치료책을 일컬어 저는 ‘댕큐 테라피’(thank-you therapy)라고 부릅니다.
이 이야기는 단 베이커(Don Baker)라는 분이 자신의 책 ‘탱큐 테라피’를 소개하며 한 말입니다.
• 우리가 감사할 때 우리 삶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사실 감사가 그렇게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걱정스럽고 불안한 시대 속에서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여전히 감사할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 우리가 감사해야할 이유
(1)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때문에
• 오늘 본문을 보면 열명의 문둥병환자들, 다른 말로 한센씨 병, 혹은 나병이라 부르죠. 나병환자 열명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 나병환자들은 오늘날의 AIDS 환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치유될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없습니다.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야했고, 혹시 동네에 이런 나병환자들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부정하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치면서 돌을 던져 나병환자들을 쫒아냈습니다. 이것은 나병이 사람들에게 전염되기 때문에 전염을 막기위한 방편이었지만, 나병환자들 입장에서는 가족들과도 격리되어야 하는 아픔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열 사람의 나병환자들/ 문둥병 환자들이 고침받았습니다. 나병환자의 전력을 가진 사람이 동네에 살기위해서는 동네 제사장들에게 더 이상 나병이 없다는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말씀하셨을 예수님이 이 사람들을 고쳐놓고 제사장에게 가라고 하시지 않고, 그대로 제사장에게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다가 보니까 이 사람들의 나병이 다 치료된 것입니다.
14절.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만 감격적인 순간이었겠습니까? 열사람의 나병환자들이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제사장에게로 가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아직 다 나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무작정 가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까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멀쩡해 진 것입니다. 피부병 같은 것도 없어진 것입니다. 반점도 얼룩도 다 사라졌습니다. 흉측한 모습들이 사라졌습니다. 가다가 얼마나 이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얼마나 마음이 흥분했겠습니까?
• 이것은 예수님의 기적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은혜입니다. 평생을 나병환자로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야했던 이들이 이제는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건강한 몸으로 무언가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꿈도 펼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우리가 감사해야할 이유, 바로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여러분, 영어의 감사란 말 ‘THANK'는 생각한다는 'THINK'와 같은 어근입니다. 생각해보면 주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주님께 감사할 일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스러운 일들 속에도 생각해보면 주님의 은혜가 참 많아요. 누군가의 글에 이런 글이 적혀있습니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세탁할 옷이 집안 한 구석에 쌓여 있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에 대 청소가 필요하고 문고리를 갈아야 하고 창문을 갈아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몸을 위탁할 집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잠시라도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뒷 자리에 앉아 있는 교우의 찬송 음정이 억망으로 들려오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어나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
• 우리 삶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님의 은혜가 많습니다. 나에게 불평스러운 것도 주님의 은혜라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질병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얘기했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가 없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내 은혜가 네게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가 있지만, 생각해보면 이것 말고도 주님의 은혜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 삶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불편한 것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 무엇보다 큰 주님의 은혜는 나병보다도, AIDS보다도 더 무서운 영혼의 질병, 죄의 질병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치유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고,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어야 하는 저희들,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영원한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값없이 용서해주시고, 은혜로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은혜 때문에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바울은 로마서 이를 가리켜 “은혜 위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2) 주님께서 감사를 기대하시기 때문에
• 나병 환자 열명 중에 한 사람이 주님께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감사를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나병환자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고침받으면 돌아와서 감사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자발적인 감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더군다나 고침받고 감사하기 위해서 돌아온 사람은 16절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18절에서는 그를 이방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방인도 와서 감사하고 있는데 정작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 한국에 입시철이 되면 자녀들의 대학진학을 앞둔 부모님들이 새벽에 정말 열심히 나와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감사기도드리기 위해서 새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입시철이 지나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요. 예수님께서는 물으실 것입니다. “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고침받은 아홉은 어디있느냐? 그 기도응답받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있느냐?
• '그 아홉의 변명' 이라고 하는 작자 미상의 글이 있습니다.
한 사람은 '의사와 제사장에게 가서 정밀검사를 해야겠다' 해서 갔다는 겁니다. '이게 나은 것 같은데 정말 나았는지.' 아주 의심이 많은 사람이에요.'가서 정밀검사를 해야지' 그래서 가버렸어요.
두 번째 사람은 혹, '재발 가능성이 있는지도 몰라. 그런고로 며칠 두고 봐야겠다.' 이거, 신중론이요. 이거 나았다고 하는데 꿈같은 얘기라서 정말 나았는지 좀 기다려 봐야겠다는 거예요.
세 번째 사람은 '내 병은 본래 문둥병이 아닌 좀 특이한 피부병 정도였던가 보다.' 이건 회의론자입니다.
네 번째 사람은 '내 병은 나을 때가 돼서 나았을 거야.'이건 자연현상으로 보려고 합니다. 가만히 보면 그런 일들이 많잖아요. 어떤 병 걸렸다가 나았을 때, "어떻게 나았어?""그저 뭐, 약도 좀 쓰고 병원에도 가긴 했지만 나을 때가 되어서 나았나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다섯 번째 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가졌던 밭과 재산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이게 궁금해요, 이제 먹고 살아야겠으니까. 그래서 그걸 빨리 알아보기 위해서 가버렸어요.
여섯 번째 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같이 있었던 가정과 식구들, 특별히 아내가 수절하고 있는지 그게 궁금해요. 그래서 가버렸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은'그리스도께서 특별히 해준 것이 없잖아.'안수를 해준 것도 아니고, 어루만져준 것도 아니고, 안찰을 한 것도 아니고, 약을 준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아, 그저 "가서 보여라" 한 말씀 밖에 안했는데 아, 뭐 예수님이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란 말입니다.
여덟 번째 사람은 '다른 유명한 랍비들도 이런 것은 아마 가능할는지 몰라.'예수님의 능력을 상대화 해버렸단 말입니다.
아홉 번째 사람은'이 모습대로 갈 수는 없잖아. 가서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고 예물을 가지고 그리고 예수님께 가야지.'그래서 가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6-17)
• 도스토예프스키는 1864년 「지하에서 온 편지」 (Notes from Underground)에서 인간에 관해 이렇게 썼다.
“인간은 바보가 아닌 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른다! 놀라울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 사실 나는 인간에 대한 최고의 정의가 ‘감사할 줄 모르는 두 발 달린 동물’ 이라고 생각한다."
•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감사의 할 것들을 주십니다. 이 나병환자가 돌아와서 주님께 감사하자, 주님께서는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9절.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이 사람의 육체의 질병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영혼의 질병인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의 선물도 허락하십니다.
• 스펄젼 목사님은 :
"촛불을 보고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고 햇빛 보고 감사하는 람에게는하나님이 촛불도 전등불도 달빛도 필요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감사를 기대하시고 감사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감사할 일들을 많이 주십니다. 이것이 신비한 감사의 법칙입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수록 감사할 일이 많아지고, 불평하고 불평하면 불평할 일이 많아집니다. 우리가 작은 것에 감사할 때 주님께서는 더 큰 감사의 제목을 주십니다.
•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집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전 당시 유럽 성악계에 태양처럼 떠오른 한국 여성이 한명있었다고 합니다. 푸치니의 ‘나비부인’ 주인공으로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 공연을 하면 ‘비로서 나비부인을 찾았다’고 호평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프리마돈나가 된 배경이 재미있습니다. 지금 이태리에는 성악을 공부하고 할 일없이 놀고 있는 사람이 3,000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 여인도 이태리에서 수년동안 성악공부를 마쳤지만, 마땅한 배역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눈때문이라 생각하고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연락을 해서 한국의 유명한 성형의고 의사에게 쌍꺼풀 수술을 하기로 예약하고 들어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그 주일날 로마 한인교회의 목사님 설교 내용이 유별났습니다. “왜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않느냐, 왜 여인들이 쌍꺼풀 수술을 하냐, 쌍꺼풀 수술해서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 갔는데 하나님이 너 누구냐, 나는 너한테 쌍꺼풀 안 줬는데 너는 누구냐, 이러면 어떻게 하냐”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유치한 설교내용이라 생각될 수 있는데, 그 설교를 듣고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기로 적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서 쌍꺼풀 수술을 안한다고 연락을 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쌍꺼풀 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하기로 되어있는 다음날에 있는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게되었고 거기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독일의 유명한 극장의 극장장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비부인에 발탁된 젓입니다. 조연도 많이 안 해 본 사람이 주연을 하려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극장장에게 어느 날 물었습니다. “나처럼 서툰 사람을 왜 주연으로 뽑았느냐”고 말입니다. 극장장의 대답이 <당신의 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나비부인은 일본 여인이지만, 일본 사람의 가창력은 한국 사람에 비해서 떨어진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인정을 못 받는대요. 그뿐만 아니라 일본 여자는 100퍼센트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 여자를 무대 위에 올려놓으면 유럽 관객이 보기에 일본 여자로 보이지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너 같은 가창력을 가진 사람 가운데 쌍꺼풀 없는 동양 여자를 처음 봤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그분은 무대 위에서 나비부인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3) 주님께 영광돌리는 길이기 때문에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1장 1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무엇이뇨, 이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그 안에서 영원히 즐거워하는 그것입니다.” 릭 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 제 1장 첫 번째 소제목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It's not about you" (이것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된 존재입니다. 구약의 이사야서는 이런 하나님이 음성을 듣습니다.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우리가 창조된 목적,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 그런데 질문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특별한 일을 행해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예배당을 짓고, 오케스트라와 웅장한 성가대가 있는 예배들 드려야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형 체육관을 빌려 커다란 집회를 가져야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이 이 사회에서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유명인사가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러나 본문 말씀 18절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감사하기 위해 돌아온 이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작은 일에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일에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기도로 감사하시고, 물질로 감사하시고, 찬양으로 감사하시고, 시로 감사하시고 구체적으로 감사하십시오. 작은 일에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사람이 큰 일에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 이렇게 감사가 습관이 된 한 분을 꼽으라면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을 꼽겠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폭동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 여수에 직결해 있던 14연대 소속 군인들중 남로당계열의 군인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사건이 소위 여수순천반란사건입니다. 이 와중에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 순천사범학교 졸업을 앞둔 동인이와 동신이가 공산당 청년들에 의해서 체포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버리는 순교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손목사님은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중 두 아들의 순교소식을 접하자마자 즉시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뜻이 있어서 불러 가신 것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내 그분의 기도는 이런 기도로 집중되었습니다. “하나님, 내 두 아들을 죽인 사람, 생명을 보존해 주십시오. 제가 전도하겠습니다. 그가 그대로 지옥에 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저에게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그리고 미군사령관을 찾아가서 진정해서 마침내 그를 양아들로 삼고 자기 두 아들이 못 다한 일을 하라고 손안신이라는 이름을 그에게 지어줍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나타난 손목사님, 9가지의 유명한 감사를 드립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 가장 귀중한 장남과 차남을 바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고 와석종신해도 복이라 하였는데 전도하다 총살 순교했으니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아들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을 삼고자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서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을 인해서 감사 드립니다. 아홉째,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전남 여수에 가시면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기념사진들과 유품들이있는데, 거기에는 장례식을 치른 바로 그 다음 주일날 손목사님이 드린 감사헌금의 봉투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두 아들의 순교를 감사하며, 1만원, 손양원]당시 손목사님의 한달 월급이 80원이었다고 합니다.
• 이렇게 감사가 습관이 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때때로 우리 삶은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감사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대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2008. 11. 22.
2008. 11. 17.
2008. 11. 14.
2008. 11. 1.
2008. 10. 27.
2008. 10. 20.
2008. 10. 12.
막9:15-29 이웃 사랑의 기적을 위하여/이근선목사/081012
이웃사랑축제
전도-새들백/릭워렌 - ‘믿는자들, 믿지 않는 자들이 한가지 공통점: 모두 전도를 싫어한다’
전도를 위해서 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아예 전도자체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여러분은 혹시 전도를 해보려고 하다가 절망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워하고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 전도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어떤 일에 절망을 느꼈던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 본문 : 오늘 본문에 보시면 이 간질병에 들린 어린아이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치유를 부탁했습니다.
18절.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제자들이 물론 열심히 노력을 했겠지요. 그러나 이 아이의 병이 도무지 고쳐지지 않습니다.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 특히 전도문제에 우리는 절망감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배우자를 볼 때, 자녀들을 볼 때 우리는 인간적인 절망감을 느낍니다. 오랫동안 전도하려고 애를 썼는데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누군가 때문에 절망감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 안에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어진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가족들이 주님을 만나게 되는 역사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그 사람이 예수님의 사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1. 믿음의 시도가 필요합니다.
• 변화산 아래에서의 제자들의 절망. 예수님께서 이 상황을 보시고 제일 먼저 하신 말씀.
• 19절.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우리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믿음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을 때 우리는 믿음을 포기합니다.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도라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내 이웃을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실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가 포기했기 때문에 전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은 기적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포기한 그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절망을 느꼈던 그 소년을 치유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믿음으로 응답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믿음으로 응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답답해하셨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나를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도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원해주실 수 있다는 것도 믿으셔야 합니다.
• 본문/ 아이의 아버지/ 22절.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도와주십시오’
• 예수님/ 23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잘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 이 아이의 아버지처럼 기도하십시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음을 도와주소서’
여러분 이 말씀을 믿고 나갑시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는 말씀을 믿읍시다. 나도 하나님의 전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읍시다.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 상황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포기해버렸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한번 도전해 보십시오. 이번 사랑의 축제에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겠다고 도전해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하시는 일을 경험해 보십시오.
지난 주에 노벨상 수상이 있었고, 여기에는 일본 과학계에서만 3명의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고 우리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과학적인 진보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 획기적으로 변화하곤 했습니다.
1947년 10월 14일, 조종사 척 예거 (Chuck Yeager, 1923~)는 ‘보이지 않는 장벽’ 으로 알려져 온 음속의 한계를 돌파함으로써 마침내 초음속 비행의 시대를 열었다.
당시 과학계에서는 마하 1의 속도에서는 조종사와 비행기 모두가 산산조각날 것이라느니, 혹은 조종사는 목소리를 잃고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또 극심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등 섬뜩한 예견들을 하던 터였다. 그러나 예거는 그 역사적인 날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벨 항공(BeLL Aviation)의 X-1기에 탑승하여 시속 700마일(마하 1,06)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3주 후 마하 1.35로 비행했고, 6년 후에는 다시 시속 1,612마일(마하 2.44)이라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깨뜨릴 수 없는 장벽에 대한 신화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들이었다. 예거는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비행은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마하를 가리키는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늘은 마하 0.965에 도달했고, 곧 속도계의오른쪽 끝으로 기울었다. 나는 마치 환각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 초음속으로 날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어린애기의 엉덩이만큼이나 부드러웠다. 그런 편안함이라면 나이 든 할머니라도 거기에 앉아서 레모네이드를 즐길 수 있으리라! 나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염려하고 그토록 기뻐했건만, 막상 음속을 돌파하고 나니 오히려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미지의 것이었던 음속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실은 포크로 젤리를 가르는 것처럼, 마치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쉬웠다. 그러나 나는 훗날 그때의 임무가 왜 그렇게 실망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그건 진정한 장벽은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음속 비행에 관한 우리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여러분에게도 절대도달할 수 없다는 마하1의 속도는 없습니까? 나는 절대로 거기까지는 갈 수 없다. 내가 전도를 해? 그것은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미리 포기해버렸다면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음을 도와주소서.’
2.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 제자들의 질문/ 28절.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 예수님/ 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귀신이 쫒겨나고 하는 일은 영적인 일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찾아갈 수 있고, 교회를 소개할 수 있고, 간증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믿고 안믿고는 사람의 영역이 아닙니다. 성령으로만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기도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 우리가 왜 기도하지 않을까요? 교만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우리는 절박하게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역사해주셔야 하는 일이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기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에서 믿음을 강조했는데,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신뢰한다면 기도할 것입니다.
• 마17:21
그런데 이 것을 비교하면 재미있어요. 똑같은 기사가 마태복음에도 취급되어 있는데, 마태복음 17장 21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마태복음 17장 21절입니다. 웃는 사람은 빨리 찾은 사람이에요. 왜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마태복음 17장 21절을 딱 찾아보면 뭐가 나왔습니까. '없음'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없음' 하하. 그러나 어떤 성경에 보면 우리가 쓰고 있는 성경은 다 사본인데 카피한 것인데, 어떤 사본에 보면 마태복음 17장 21절 없음 그러고 난외 주로 바깥에다 코멘트를 해 놨어요. 뭐라고 썼습니까. 기도가,
어떤 사본에 의하면, 기도와 금식이 아니고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
기도와 함께 뭘 강조했습니까. 금식. 기도만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금식까지 강조하신 것으로 되어 있어요.
금식은 무엇입니까. 기도의 가장 강렬한 형태가 금식입니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 하루를 살면서 절대로 빼놓지 않는 것, 그것은 먹는 일이죠. 그러나 그 식사 시간까지 단절하고 하나님께 매달린다. 기도의 가장 강렬한 형태가 바로 금식입니다. 기도와 금식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사람들이 종종 '목사님 저도 어려운 많아서 기도해 봤어요. 그런데 안돼데요' 제가 가끔 반문 합니다. 금식까지 해 보셨습니까. 한 두 번의 기도가 아니라 정말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 기도의 가장 간절한 형태가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금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능력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초대 교회의 능력. 기도의 능력입니다. 사도 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는, 초대 교회가 굉장히 이상적이 교회라 지금 현대 교회 보다 굉장히 우수한 어떤 교회라는 상상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와 똑같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교인 숫자도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는 당대의 세계에 그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과 충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 어디에 있었느냐. 금식에 있었어요. 금식에. 사도 행전에 페이지마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의 장이 없이 사도 행전의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이웃사랑축제를 열흘 앞두고 특별기도회를 갖기 원합니다. 여러분 할 수 있는대로 이 기도회에 나옵시오. 여러분 VIP 가 안정해지셨습니까? 그런 대상자를 보여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찾으십시오 ‘구하라 그러면 구할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르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VIP 명단을 교회에 제출해주십시오. 우리는 이들을 위해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와 금식외에는 이런 류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전도는 이웃을 위한 최고의 사랑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영원한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런데 기적이 필요합니다. 이 이웃사랑의 기적은 기도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TABANACLE 교회.
설교의 황태자 찰스 스펄젼
스펄젼의 전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스펼전 교회와 목사님을 방문하면 목사님은 항상 이 방문객을 데리고 교회 본당이 아니라 교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갔데요. 그 아래층에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 목회의 비밀은 바로 여기 기도하는 이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저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 우리의 교회는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스펄젼 목사님의 탁월한 설교만을 하나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 그 기도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그들은 한때 그 교회의 황금기를 누리고 영국을 변형시키는 변혁의 초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펄젼 목사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어떤 전기 하나를 읽어보니까 제 눈에 갑자기 최근에 그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다시 그 전기를 읽어 보았어요. 스펄젼 목사님이 떠나간 후에 교회는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심상치 않은 변화중의 하나가 기도하는 운동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기도하는 그룹이 없어졌어요. 저는 만약 기도하는 성도들이 기도로 지켰더라면 그 교회는 지금도 능력있는 사역을 계속 하리라고 믿습니다. 기도가 사라질 때 하나님은 영광을 그 교회에서 거두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은혜를 신뢰하셔야 합니다.
• 제자들은 믿음에 있어서, 기도에 있어서 실패했습니다. 우리들도 자주 실패합니다. 믿음이 약해지고, 기도가 중단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예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의 모습은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기대하시는 대로 살지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니오.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에게 다가가셔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9절.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오늘도 주님은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포기해버린 사람, 도무지 변화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바로 그 사람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그 사건을 해결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 기독교의 핵심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때때로 실수 하고 실패하는 사람이라도 그런사람들을 쓰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하였고 결함을 지녔었다.
위대하다는 하나님의 종들도 마찬가지였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 배반했었다. 성 어거스틴도 지워버리고 싶은 방탕한 과거가 있었다. 프란시스도 성자라 불리운 뒤에도 여자의 유혹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고뇌했었다. 성 쟌다아크도 처음에는 자기 주장을 철회했었다. 루터도 교황의 사형선고를 받고 문을 닫고 부들부들 떨었다. 한국 기독교계의 존경받는 원로 한경직 목사도 일제 (日帝) 때 신사(神社)를 참배했다.
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들에게 기꺼이 당신의 일을 부탁하셨다. 우리는 모두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써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이 풍성한 은혜가 우리에게 이웃사랑의 기적을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했을지라도, 주님께로 가지고 나가면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사용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로 우리는 이웃사랑의 기적을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은혜는 우리 뿐 아니라 이번 이웃사랑축제 가운데 사람들을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아까 찰스 스펄젼 이야기를 했는데 스펄젼 전기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이 주일 날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템즈 강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 내가 템즈 강의 작은 물고기가 아닐까 ? 내가 이 물을 다 마셔버려서 템즈 강이 다 말라 버리면 어떡하지 ?' 그때 하나님이 그 작은 물고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마음껏 들여마셔라, 작은 물고기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애굽이 통치하던 시대의 작은 새앙 쥐가 아닐까 ? 내가 풍년이 들었을 때, 그 곡식을 이 새앙쥐가 조금씩 먹는데 이거 내가 다 먹어서 이 곡간이 텅텅 비면 어떡하지 ?' 그때 요셉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껏 먹어라. 이 작은 새앙쥐야."
문득 '내가 등산하는 한 사람의 등산객이 아닐까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의 공기가 너무 좋은데, 내가 호흡하다가 다 마셔 버려서 공기가 고갈되면 어떡하지 ?' 그때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껏 다 들여 마셔라, 작은 인간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2008. 10. 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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