빌3 10-21 푯대를 향하여
인생을 살아가는데 선배가 있다는 것은 좋은 것이다. 나를 붙들어주고 충고해주고 안내해줄 사람이 있다면 행복한 것이다. 이런 사람들을 우리들은 멘토, 인생코치라고도 한다. 그런데 단지 말로만 충고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을 보여주고 본을 보이는 사람이 있다면 더욱 좋을 것이다. 바울이 그런 사람이었다.
v17. 형제들아 너희는 함께 나를 본받으라
바울은 많은 영역에서 본을 보였다. 그러나 본문을 통해 바울에게서 배울 수 있는 한 가지가 있다. 비전의 사람이었다는 것이다. 그에게는 비전이 있었다. 꿈이 있었다. 본문에서는 그것을 <푯대>라고 말한다. 요즘은 달리기 경주의 마지막지점에 테이프로 들고서 최후의 승자를 가리지만, 예날에는 골인지점에 하나의 푯대, 하나의 깃발을 세워둔다. 경주자들은 그 깃발을 바라보고 달렸다. 바울은 자기 인생에는 분명한 푯대가 있다고 했다. 모든 성공하는 사람들의 공통된 특징은 그들에게는 비전과 꿈이 있다는 것이다. 성경에 나오는 하나님의 사람들은 한결같이 비전과 꿈이 있었다는 것이다. 인생을 통해서 꼭 이루고 싶은 푯대가 있었다. 그러나 말로만 비전을 말하는 사람이 아니라, 그 비전과 푯대를 향해 전심전력으로 달렸다고 말한다.
12-13절은 끝날 때 마다 “달려가노라...달려가노라”라고 말한다. 그는 종종 인생을 달리기로 묘사했다.
고전 9:24-27 운동장에서 달음질하는 자들이 다 달릴지라도 오직 상을 받는 사람은 한 사람인 줄을 너희가 알지 못하느냐 너희도 상을 받도록 이와 같이 달음질하라 ....그러므로 나는 달음질하기를 향방 없는 것 같이 아니하고....
딤후 4:7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그런데 오늘날 많은 사람들이 비전과 꿈이 없이 살아간다. 그냥 안주하며 살아간다. 자칫잘못하면 이민생활은 비전과 꿈의 무덤일 수 있다. 더 이상 추구하는 목표도, 비전도, 꿈도 없이 그냥 삶에 편안하게 안주하며 살아갈 수 있다. 이민목회를 시작하면서 하나님께 기도한 것이 있다. 이민생활에 안주하지 않게 해달라고..그저 자녀들이나 잘키우는게 꿈이 되지 않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비전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꿈의 사람이 되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하나님이 내게 주신 소명을 이룰 수 있게 해달라고 기도했다.
인생이 달리기라면, 달리기를 포기하는 데는 두가지 이유가 있을 수 있다.
첫째, 자기가 이미 그 목표지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는 경우이다.
아무리 뛰는 것을 좋아하고, 잘 뛰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더 이상 뛰지 않는 경우가 있는데, 자기가 이미 목표지점에 와있다고 생각하면 이 사람은 뛰지 않을 것이다. 골인지점에 와있는데 뭐하러 뛰겠는가? 절대로 안움직인다. 이 사람은 더 이상 달리지 않을 것이다.
바울은 말했다. 12-14절에서 바울은 말한다.
내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온전히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가노라
바울은 자기가 이미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목표지점에 와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여러분, 바울이 어떤 사람인가? 그는 대부분의 신약성경을 쓴 사람이었다. 로마 전역에 기독교 복음을 전파하고, 많은 지역에 교회를 세웠던 사람이다. 디모데와 디도를 비룻하여 많은 기독교 지도자들 양성한 사람이었다. 예수님의 수제자였던 베드로와 견줄만한 사람이었다. 바울 일행이 빌립보에 도착하니까 어떤 사람들이 말했다. 천하를 어지럽히던 사람들이 왔다고 말했다. 어떤 영어성경 번역에는 이 사람들은 세상을 upside down 시키는 사람들이다, 다시 말하면 세상을 뒤집어놓는 사람들이다라고 했다. 이만큼 바울의 영향력은 대단했다. 그런데 그는 말한다. 나는 내가 이룬 줄로 생각하지 않는다. 목표지점에 도달했다고 생각하지 않는다.
누군가 말했다. 성공의 최대의 적은 차선이다. 작은 성공에 만족해하는 사람들은 큰 성공을 향해 움직이지 않는다. 지금 내가 이룬 자그마한 성공에 도취되어 있으면 나는 안주하게 될 것이다. 한국에서나 지금까지 살아오면서 내가 이룬 작은 성공에 만족하는 사람은 더 이상 뛰지 않을 것이다. 미국 시카코에 있는 윌로우크릭교회의 빌하이벨스 목사는 비전을 이렇제 정의했다. 비전은 거룩한 불만족이다. 비전은 거룩한 불만족이다. 사탄은 우리에게 작은 성공이라는 미끼를 주어서 정말 뛰어야할 치열한 전쟁터에서 놀고 먹게 만든다. 진짜 전쟁은 오지 않았는데, 지엽적인 전쟁에서 이룬 작은 성공에 도취되어 진짜 전쟁을 준비하지 못한 사람들과 같다.
현실에 안주하고 만족해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신앙이 미지근하다는 것이다. 뭔가 열의도 열심도 헌신도 없다. 요한계시록에 있는 라오디게아 교회가 그런교회였다. 요한계시록 2-3장에는 일곱교회가 등장하고 그 일곱교회에 편지를 보내는데, 다른 교회는 조금이나마 다 칭찬을 받는데, 이 라오디게아 교회만은 칭찬받지 못했다. 이 교회는 “덥지도 차지도 않아서 예수님이 토해내고 싶은” 교회였다. 그런데 이 교회 사람들이 이렇게 미지근하게 신앙생활하는데는 이유가 있었다.
네가 이같이 미지근하여 뜨겁지도 아니하고 차지도 아니하니 내 입에서 너를 토하여 버리리라 네가 말하기를 나는 부자라 부요하여 부족한 것이 없다 하나 네 곤고한 것과 가련한 것과 가난한 것과 눈 먼 것과 벌거벗은 것을 알지 못하는도다 (계시록 3:16-17)
이 교회 사람들은 자기는 부자며, 부족한 것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나 이들의 실상은 가난하고 가력한고 곤고하고 눈 멀고 벌거벗었다는 것이다. 우리가 이런 사람들일 수 있다. 우리의 실상은 눈멀었는데 본다고 생각할 수 있다. 가난한데 부자라고 생각하고, 벌거벗었는데 옷입었다고 여길 수 있다는 것이다.
비전의 사람이 되기 위해서 자기 만족에서 벗어날 줄 알아야 한다. 우리가 이미 얻었다 함도 아니요 이루었다 함도 아니라고 말할 수 있어야 한다. 뒤에 것은 잊어버릴 수 있어야 한다. 우리가 이룬 작은 것들도 잊어야 한다. 거룩한 불만족을 가질 수 있어야 한다. 그래야 앞을 향해 달려갈 수 있다.
바울이 누구보다도 열심히 사역하며 선교하며 복음을 전하면서도 자기는 아직 이룬 줄로 생각하지 않는다고 말한 이유는 무엇인가? 그것은 우리가 지난 주에 묵상한 내용이었다. 그는 예수 믿기 이전에 자랑할 것이 많았다. 정통 유대인이라는 것에 대해서 자부심이 있었고, 당대 최고의 율법학자였던 가말리엘의 문하생이었고, 율법에 정통했고, 하나님께 열심이었고, 율법에 엄격했던 바리새파사람이었다. 그러나 예수를 만나고 보니까 자기가 이룬 것이 아무 것도 아니라는 것을 깨닫게 되었다. 자기가 자랑하던 것이 배설물이요 똥이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다. 조금도 내세울 것이 없는 하잘데 없는 것이라는 사실을 알았다. 그만큼 그가 만난 예수는 대단했다. 그는 유대학자에게도, 헬라문화에서도 자라났지만, 예수와 견줄만한 사람이 없었다. 예수가 가장 고상했다. 그래서 말한다. 나는 이 예수를 알고 싶다. 예수를 알고나니까 자기가 이룬 사람이 아니었다. 예전에는 자랑할 것이 많았는데, 예수를 만나고 보니까 그게 아니었다. 그 예수를 더 알고 싶었다. 그 예수의 능력을 맛보고 싶었다. 그 예수와 동참하고 본받고 싶었다. 고난의 길이라 할지라도 그를 알고 싶었다. 이제 그의 푯대는 바뀌었다. 예수가 이제 그의 인생목표가 되었다.
10절. 내가 그리스도와 그 부활의 권능과 그 고난에 참여함을 알고자 하여
영국에 알파코스라는 성경공부 프로그램을 시작하여 죽어가는 영국교회를 살리고 있다는 평을 받고 있는 닉키 검블이라는 목사님은 스쿼시를 아주 좋아하고 아주 잘했다. 그런데 어느날 이 목사님이 스쿼시를 치고 있는 현장에 세계적인 스쿼시 선수가 잠깐 방문할 일이 생겼고, 함께 칠 기회가 있었다고 한다. 이날의 경험을 닉키 검블 목사님은 이렇게 말한다. “나는 스쿼시를 잘안다고 생각해왔다. 그러나 이 선수와의 짧은 게임을 통해서 내가 발견할 것이 있다. 나는 스쿼시를 제대로 모르고 있었다는 느낌이다.” 우리가 예수를 제대로 만나지 않으면 우리는 우리의 작은 경력을 자랑할 줄 모른다. 우리가 좀 뭐했다는 것에 만족할 지 모른다. 그러나 진짜 예수를 만나보라. 그러면 당신은 결코 만족이 되지 않는 배고픔을 경험하게 될 것이다. 예수를 알고 싶다. 예수를 더 만나고 싶다. 예수를 더 체험하고 싶다. 이 예수를 본받고 싶다. 이 예수와 더 친해지고 싶다. 이것이 예수를 만난 사람들의 갈증이요, 배고픔이다. 아직 이런 배고픔이 생기지 않는다면 나는 감히 말한다. 여러분은 아직 예수를 제대로 만난 것이 아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작은 성공에 만족하지 말라. 예수를 위한 꿈을 가지라, 비전을 가지라, 예수 안에서 인생푯대를세우라. 그리고 그리로 달려가라.
어떤 아버지가 어린 딸의 손을 잡고 동네의 공원을 갔다. 벤치에 앉아서 딸의 노는 모습을 지켜보던 이 아버지는 그 공원을 둘러보게 되었다. 그 동네 공원은 매우 지저분했고 깨끗하지 못했고 안전하지도 않다고 느꼈다. “이정도 밖에 공원을 만들 수 없는가? 아이들이 어떤 과학적인 탐구도 할 수 있고 자연과 어우러진 아름다운 공원에서 미래의 꿈을 꿀 수 있는 어린이들만의 천국을 만들 수는 없을까?”하는 생각이 이 아버지의 마음 속에 떠올랐다. 이 아버지가 바로 월트 디즈니였다. 월트 디즈니가 가졌던 이 창조적인 불만이 바로 디즈니 랜드를 탄생시킨 원동력이 되었다.
인생은 달리기이다. 그런데 사람들이 달리기를 포기하는 첫 번째 이유는 적당한 성공에 만족하는 경우라 했다. 두 번째 이유는 주변 것들을 신경쓰느라 목표에 집중하지 못하는 경우이다.
13-14절. 형제들아 나는 아직 내가 잡은 줄로 여기지 아니하고 오직 한 일 즉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여기 오직 한일이라는 것은 오직 한가지 일이라는 뜻이다. 한가지 일, 이것은 집중을 말한다. 태양은 따뜻하고 좋은 것인데, 돋보기로 햇빛을 모으면 종이도, 때로는 나무도 태운다. 이것을 고도로 집중시킨 것이 레이저 광선이어서 쇠로 된 것도 뚫는다. 실패하는 사람들의 특징은 동시에 100가지 일을 다할려고 하는 사람들이다. 나는 1박2일이나 무릎팍 도사 같은데 나와서 별로 영양가 없는 얘기나 해대는 연예인을 별로 좋아하지 않는다. 오히려 그런데 절대로 나오지 않는 서태지같은 사람이 좋다. 가수는 노래로 승부해야하고, 배우는 연기로 승부해야한다. 성공하는 사람들은 집중할 줄 안다. 바울은 푯대를 향해 달려간다고 했다. 여기서 달려가는다는 말은 <디오코>라는 말로 사냥개가 사냥감을 향해 달려갈 때 쓰는 말이다. 포수가 새에게 총을 써서 새가 어딘가 떨어지면 사냥개는 그 먹이감이 있는 곳으로 쏜살같이 달려간다. 거기에 온통 집중한다. 바울은 자기는 하나님이 주신 그 인생목표를 향해 그렇게 달려간다고 했다.
그러나 우리가 이렇게 살아가는 것을 방해하고, 우리를 산만하게 만드는 것들이 있다. 달리는 선수가 목표지점을 바라보지 못하고 자꾸 딴데 신경쓰면 우승할 수 없다. 우리를 산만케 만드는 것이 무엇인가?
18-19절. 내가 여러 번 너희에게 말하였거니와 이제도 눈물을 흘리며 말하노니 여러 사람들이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원수로 행하느니라 그들의 마침은 멸망이요 그들의 신은 배요 그 영광은 그들의 부끄러움에 있고 땅의 일을 생각하는 자라
바울은 어떤 사람들을 말하는데, 이 사람들은 그들의 배가 신이요, 땅의 일만 생각한다고 했다. 배가 신이라는 것은 먹는 것이 신이라는 말이다. 성경은 절대로 우리가 먹고 입는 것이 죄악된 것이라 말하지 않는다. 예수께서는 사람의 육신을 입고 이 땅에 오셨다. 일용할 양식을 위해서 기도하라고 가르치셨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가운데 먹을 수 있고, 예쁜 옷을 입을 수 있고, 좋은 집을 살수 있고, 좋은 직장을 가질 수 있다. 문제는 그것이 우리 신이 되는 것이다. 먹고 사는 문제가 우상이 되는 것이다. 이런 것이 온통 우리의 관심의 전부가 되는 것이 문제다. 여러분, 한번 잡지를 보라. 음식, 옷, 화장품, 다이어트, 운동 등이 거의 전부다. 이런 것들이 우리 문화를 지배하고 우리 생각을 지배할 수가 있다. 이런 것들을 쳐다보느라고, 정말 우리가 쳐다보아야할 인생목표를 쳐다보지 못하면 우리는 제대로 인생을 경주하는 것이 아니다.
달리는 선수가 땅만 쳐다보고 달리면 우승할 수 없다. 이 땅에서 우리가 목표삼아야할 것은 있다. 좋은 직장을 갖는 것, 좋은 직업을 선택하는 것은 좋은 목표일수 있다. 좋은 집을 사고, 좋은 차를 사는 것도 좋은 목표일 수 있다. 그러나 여러분, 저는 예수회를 창설했던 익나티우스 로얄라(1491-1556)의 말은 인용하고 싶다.
“모든 사람들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경외하고 섬기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그리고 이 땅의 다른 모든 것들은 인간을 위해서 창조되었다. 이것들은 인간이 창조된 목적을 이룰 수 있도록 돕기 위해 존재하는 것이다. 그러므로 이것들이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이루는 한에 있어서는 다 사용할 수 있고, 우리가 창조된 목적을 이루는데 방해가 된다면 이 모든 것들을 피해야한다”
그러므로 여러분, 이 땅의 모든 것들을 다 사용하십시오. 여러분이 하고 싶은 일이 있는가? 그 일을 하라. 원하는 직업, 직장이 있는가? 그것을 하라. 의사가 되고 싶으면 의사가 되고, 변호사가 되고 싶으면 변호사가 되고, 정치인이 되고 싶으면 정치인이 되고, 음악가가 되고 싶으면 음악가가 되라. 원하는 나라가 있는가? 그곳에 얼마든지 그런 나라에 갈 수 있다. 여러분은 이 땅의 모든 것을 다 취할 수 있다. 다만 여러분이 창조된 목적을 잊지말라. 우리는 하나님을 영화롭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기 위해서,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창조되었다. 여러분의 직업을 가지고 하나님을 섬기라. 의사가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고 엔지니어가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고, 음악가가 되어서 하나님을 섬기라. 그러나 절대로 음악가가 되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목표라고 말하지 말라. 좋은 집사고 좋은 차 사는 것이 여러분의 인생목표라고 말하지 말라. 이것들은 우리가 하나님을 섬기기 위해서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비전을 갖되 더 높은 비전을 가지라. 대학 진학 이후의 비전을 가지라. 직장 너머의 비전을 가지라. 의사가 되어서 어떻게 하나님을 섬기고 싶은지 그 비전을 가지라. 호텔경영학을 공부하고 있으면 그것을 통해서 어떻게 하나님을 영화롭게 할 수 있는지 그것을 주님께 묻고 주님 안에서 그 소명을 찾으라.
우리는 하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이다.
14절. 푯대를 향하여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름의 상을 위하여 달려가노라
20절. 우리의 시민권은 하늘에 있는지라...
우리는 하늘의 사람들이다. 우리는 하나님의 나라를 위해서 사는 사람들이다. 우리가 달려갈 인생목표가 이 땅이 되면 여러분은 결국 후회하고 말 것이다. 이 땅은 지나가고 사람들은 변하고, 시대는 바뀐다. 이 땅에 보물을 쌓아두면 이땅의 보물은 하루아침에 사라진다. 보물을 하늘에 쌓아두라. 하나님께 소망을 두라. 하나님 안에서 여러분의 소명을 찾으라. 그리고 그것을 향해 달려가라.
척 콜슨은 하버드대학 출신이고, 미 해병대 장교로 복무했고, 자신의 법률회사를 차렸고, 그리고 나중에 정치에 입문하여 40세에 닉슨 대통령의 최측근이 되어 일하면서 King Maker 역할을 했다. 그리고 워터 게이트 사건에 연루되어 감옥에 가게 되었다. 그 직전에 그는 C.S. 루이스가 쓴 ‘순전한 기독교’라는 책을 통해서 기독교인이 된다. 그리고 감옥 안에서 그는 더욱 신앙이 깊어진다. 나중에 감옥에 나와서 교도소 선교회를 만들어 수많은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하는 일을 한다. 그는 지금 가장 영향력있는 그리스도인 중의 한 사람으로 손 꼽힌다. 한번은 라디오 방송에서 그런 얘기를 했다.
“저는 전에도 야망이 있었고, 지금도 야망이 있었습니다. 전에는 나 척 콜슨을 위한 야망이 있었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그리스도를 위한 야망이 있습니다.”
인생은 경주다. 바울은 죽음을 앞둔 인생의 마지막 편지에서 이렇게 고백했다.
나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나의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지켰으니 이제 후로는 나를 위하여 의의 면류관이 예비되었으므로 주 곧 의로우신 재판장이 그 날에 내게 주실 것이며 내게만 아니라 주의 나타나심을 사모하는 모든 자에게도니라
여기 나의 달려갈 길을 마쳤다는 것은 나의 코스를 마쳤다는 뜻이다. 그는 비전의 사람이었다. 그는 한 평생 푯대를 향해 달려갔다. 그는 자기가 이루었다고 생각하지 않았다. 그래서 그는 평생 달려갔다. 그는 주변 것들에 의해 마음 빼앗기지 않았다. 궁극적으로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 그 소명을 향해 끝까지 인생을 달렸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시점에서 몇가지 질문해보아야 한다.
● 나는 예수 안에서 비전과 꿈을 가지고 있는가?
● 이 비전은 이 땅의 비전인가? 아니면 하나님이 위에서 부르신 부르심인가?
● 그리고 나는 이 꿈과 비전을 향해 달려가고 있는가?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