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2. 22.

마가복음 12:35-42 사람들의 질문, 예수의 질문 -09.2.22

2009. 2. 17.

벧전4: 7-13 교회 봉사의 원리




폴 브랜드 박사는 인도의 벨로에서 나병 환자들을 위한 병원을 운영하고 있었다. 현재 미국의 유명한 기독교 작가로 활동하는 필립 얀시에게 많은 영향을 준 인물이기도 하다. 어느날 폴 브랜드 박사에게 피에르라는 프랑스 탁발 수도사가 병원을 찾아왔다. 그는 못생긴 얼굴에 유난히 큰 코를 가졌고, 검소한 수도사 복장을 했다. 귀족 가문에서 태어난 피에르 신부는 한때 프랑스 국회의원으로 활동하기도 했으나,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에 수천 명의 걸인들이 거리를 뒤덮고 수많은 사람들이 굶어 죽고, 유난히도 추운 겨울을 지나는 동안 수 많은 걸인들이 얼어죽고 있는데, 귀족들과 정치인들은 끝없는 논쟁만 일삼고 있는 것을 보고 더 이상 참을 수가 없었다. 피에르는 정치계에 환멸을 느끼며 관직을 포기하고 가톨릭 수도사가 되어 걸인들과 함께 생활했다.

걸인들을 외면하는 사회와 정치인들에게 혐오감을 느낀 그는 걸인들 스스로 공동체를 이루는 것만이 유일한 대안이라고 결론 내렸다. 그는 걸인들에게 더 보람된 일을 하라고 가르쳤다. 빈 병과 누더기를 줍는 일 대신 조를 나누어 도시를 청소했다. 그 다음, 버려진 벽돌로 창고를 짓고 호텔이나 사무실에서 버리는 막대한 양의 빈 병들을 수집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마지막으로 피에르는 모든 걸인들에게 자기보다 더 가난한 걸인들을 도우라는 책임을 부여했다. 그 계획은 점점 더 활발하게 진행되었고, 몇 년 후, 피에르의 사역을 다른 나라에까지 확장시키기 위해 엠마오라는 선교단체도 설립했다.

이 유명한 피에르 신부가 인도에서 나병환자 병원을 운영하는 폴 브랜드 박사를 찾아온 것은 절박한 이유가 있었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에르 신부는 자기들의 거지 공동체가 심각한 위기를 만났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피에르 신부가 그 사업을 시작하고 파리에는 거지가 사라졌기 때문에, 자기가 섬기는 거지 공동체 사람들이 도울 사람들이 없어진 것이다. ‘걸인들이 도울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 걸인들보다 더 불쌍한 사람들을 찾지 못한다면, 이 운동은 우리 내부로 향하게 될 것이다. 그러면 우리는 강력하고 부유한 단체로 변하고, 지금까지 가지고 있던 영적인 영향력을 모두 잃게 될 것이다. 더 이상 섬길 사람이 없는 상태에 이르고 만다.’

그래서 피에르 신부가 찾아온 것이 인도의 나병환자들이다. 피에르는 수백 명의 나병 환자들을 만나보았다. 그들 대부분은 천민 계급에 속한 사람들이었고, 그가 파리에서 돌보았던 걸인들보다 훨씬 더 열악한 상태에 있었다. 피에르는 항상 웃는 얼굴로 환자들을 대했다. 파리의 걸인들에게 돌아온 그는 벨로의 병원에 병동을 더 지을 수 있도록 모금을 시작했다. 병원측에서 피에르 신부에게 감사를 표하자 그는 그는 오히려, “아닙니다. 오히려 당신들이 우리를 구해주셨습니다.” 그는 돈을 받으며 감사의 뜻을 전하는 병원 사람들에게 그렇게 말했다. “우리는 반드시 봉사해야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우리는 살아갈 수 없습니다.”

봉사는 기독교 신앙의 핵심사항이다. 봉사가 없으면 교회는 교회의 생명력을 잃어버린다. 때때로 열악한 환경 속에 있다보면 우리는 봉사정신을 잃어버릴 수 있다. 이민생활도 고단하다. 삶이 만만치 않다. 그러다 보면 우리들이 빠질 수 있는 심각한 함정은 우리들의 고민, 우리들의 아픔만을 생각하게 되고, 다른 이들의 아픔에 대해서는 무감각해지는 것이다. 피에르 신부는 진짜 위기는 이런 때에 온다고 말한다. 교회의 위기는 교회가 내부의 문제만을 쳐다볼 때 찾아온다. 봉사를 잃어버릴 때 교회는 죽는다.

UN 사무총장으로 있는 반기문 총장이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을 때, 한국 방문 바로 한달 전에 있었던 일화를 소개한바 있다. 이탈리아에서 세계 각국의 정상급 혹은 각료급 인사들이 참석해서 기아도상에 있은 나라들을 위한 긴급구호자금을 마련하기로 했는데, 일본은 1억 5000만 달러를 지원하기로 했다가, 다시 2억 달러로 상향조정해서 지원하기로 했는데, 경제규모 세계 11위인 한국은 일본의 100분의 1인 150만달러가 기부금의 전부였다. 반기문 총장으로서는 낯뜨거웠던 순간이었다고 고백했다. 그것은 마치 떵떵거리는 부자가 상가에 가서는 겨우 1만원 부조금 내는 것과 같았다고 했다.

오늘 우리 교회에서는 봉사자 세미나를 하려고 한다. 우리가 믿는 신앙은 반드시 어떤 형태로든 봉사로 연결되어야 한다. 그러나 각 교회에서 이루어지는 봉사는 탈도 많고 말도 많다. 건강한 교회봉사가 되기 위해서는 봉사에 대한 성경적인 원리들을 이해할 필요가 있다. 과연 성경은 우리들의 봉사에 대해서 무엇을 말하는가? 교회 봉사의 성경적인 원리는 무엇인가?

첫번째 교회봉사의 원리는 은사의 원리이다.

교회에서 교회봉사를 하는 가장 일반적인 형태는 임명에 의해서 봉사하는 방법이다. 교회의 목회자나 혹은 중직자 회의에서 그해의 봉사자들을 임명하고, 이에 동의하고 임명받은 사람들이 교회에서 봉사하는 방법이다. 본 교회에서도 몇몇 봉사자들은 임명한다. 특히 사람들을 영적으로 돌보는 목자, 교육목자 같은 이들은 임명에 의해서 봉사하도록 한다. 성경에서도 이런 목양의 봉사를 하는 사람들을 임명해서 사역하도록 한 많은 사례가 있다.

그러나 성경의 원칙적인 봉사의 원리는 은사의 원리, 혹은 달란트의 원리이다. 10절에 보면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봉사하라고 말한다. 사람마다 자기가 잘 할 수 있는 은사가 있다. 달라트가 있다. 어떤 사람들은 노래를 잘하고, 어떤 사람들을 행정을 잘하고, 어떤 사람들은 사람들을 잘 돕고, 어떤 사람들은 기도를 잘한다. 확실한 것 한가지는 사람마다 은사가 없는 사람이 없다는 것이다. 누구든지 남을 도울 수 있는 영역이 있다.

성경은 종종 교회를 종종 사람의 몸에 비유한다. 우리 몸에는 눈도 있고, 코도 있고 발도 있고, 콩팥도 있다. 어떤 것은 눈에 띄고, 어떤 것은 눈에 띄지 않는다. 그런데 필요없는 것은 하나도 업고, 중요하지 않은 것은 하나도 없다. 모두가 필요하고 모두가 중요하다. 교회적으로 말하면 교회에는 필요없는 사람이 없고, 중요하지 않는 봉사가 없다는 것이다.

모든 교우들이 다 은사가 있다면, 교회적으로 임명을 받아야만 겨우 움직이는 구조가 되어서는 교회가 건강하지 않다. 사람들이 교회에서 봉사자 임명에 민감한 이유는 그 임명이 자기 중요성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교회에서 중요한 봉사를 맡으면 자기가 중요한 사람이 되고, 중요하지 않은 봉사를 맡으면, 이 교회는 나를 알아주지 않는구나...생각하고 기회를 보다가 교회를 나가 버린다.

내 몸에 손이 있는데, 다른 지체들이 와서 손보고 “제발 손이 하는 역할 좀 해달라”고 부탁해야 손이 손의 역할을 하는 것이 아니다. 자기가 손이면 몸안에서 손으로서의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고, 자기가 발이면 발의 역할을 하면 되는 것이다. 교회에서 자기에게 섬기는 은사를 주셨으면, 조용히 섬기면 된다. 건강한 교회는 타이틀에 의해서 움직이지 않고 은사에 따라 움직인다.

그래서 저는 올해부터 최대한 임명직을 자제하려고 한다. 대신에 여러분이 자발적으로 봉사의 자리를 찾으라. 우리 교회는 여러분이 봉사해야만 채워질 수 있는 많은 빈자리가 있다. 그 자리는 그 누구도 대신할 수 없다. 바로 여러분이다. 어떤 사람은 자꾸 화장실의 휴지통이 지저분하게 있는 것이 맘에 걸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하나님은 그 사람에게는 그 일을 맡기셨을 가능성이 많다. 어떤 사람에게는 예배 드린후에 여기 저기 주보가 떨어져있는 것이 맘에 걸리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그 사람에게는 그 일을 맡기셨을 가능성이 많다. 어떤 사람에게는 우리 교회가 처음 온 사람에게 더 따뜻하게 다가갔으면 좋겠다고 느낄지 모른다. 그 사람에게는 그 사역을 맡기셨을 가능성이 크다. 하나님이 여러분에게 무엇을 맡기셨든 그 일을 행하라.

예수님은 달란트를 종들에게 맡기고 먼길을 떠난 어떤 집주인 얘기를 하신 적이 있다. 한 사람에게는 다섯 달란트, 다른 사람에게는 두달란트, 한 사람에게는 한 달란트를 맡기셨다. 다섯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은 그것을 가지고 이윤을 남겨서 주인의 칭찬을 받았다. 그런데 한 달란트 맡은 사람은 그것을 땅에 묻어두었다가 주인에게 가져왔다. 주인은 이 종을 “악하고 게으른 종”이라고 책망하셨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맡겨주신 것들을 땅 속에 묻어두지 말라. 교회에 와서도 여러분의 은사를 땅에 묻어두지 말라. 와서 그 일을 하라. 누구에게 임명을 받기까지 기다리지 말라. 누가 부탁할 때까지 기다리지 말라. 묻어둔 달란트를 캐내라. 그리고 여러분의 달란트를 가지고 교회를 섬기고, 사람들을 섬기라.

두 번째 교회 봉사의 원리는 청지기의 원리이다.

10절을 보면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고 말씀하신다. 청지기란 말은 요즘 사회에서 잘쓰지 않는 말인데, 다른 말로 매니저란 뜻이다. 주인은 아니고, 주인에게 무엇을 맡아서 관리하는 사람을 청지기라고 불렀다. 우리에게 주신 봉사의 기회는 주인되시는 하나님께서 맡겨주신 것이다. 내가 하는 봉사는 하나님이 맡겨주신 기회라는 것을 기억하라. 이 말은 우리가 하는 봉사로 주인행세하면 안된다는 것이다. 교회의 주인은 예수님 한분 밖에 안계신다. 우리는 다만 그분이 다 달란트를 맡겨주시고, 봉사를 맡겨주셔서 하는 청지기일 뿐이다. 이것이 성경의 청지기 봉사원리인 것이다.

그런데 교회 역사는 우리가 성경적인 청지기 원리를 충실히 따르지 않았음을 보여준다. 교회에서의 어떤 봉사자리가 권력의 자리처럼 되는 경우들이 있다. 봉사자리를 가지고 교회에서 주인행세하는 사람들도 있다. 이것은 예수님의 정신과 어긋나는 것이다. 오히려 예수님은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할 때 종의 자세를 가지고 섬기기를 원하셨다.

그런데 오늘 성경본문 10절을 보시면 우리를 청지기라고 얘기했을 때,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청지기라고 말한다. 교회봉사는 참 다양하다. 여러 가지 형태의 봉사가 있다. 그러나 본문은 이 모든 봉사를 한 마디로 “은혜”라고 부른다. 은혜라는 말은 “자비”란 말과 비슷하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선물로 주신 기회라는 뜻이다. 우리는 자격이 되지 않는데 주신 기회라는 뜻이다. 사실 생각해보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은혜다. 내가 설거지 봉사를 하든, 주차봉사를 하든, 청소하는 봉사를 하든 내가 하나님께 쓰임받을 수 있다는 것은 은혜다. 이 세상에 나 말고도 똑똑하고 잘난 사람들이 많은데, 하나님은 나에게 주님을 섬길 수 있고, 주님께서 사랑하시는 교회를 위해서 섬길 수 있는 기회를 주신다는 것은 은혜다.

그러므로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할 때, 우리의 마음가짐은 감사하는 마음으로 감당해야한다. 때때로 봉사하다보면 힘든일도 있고 사람들에게서 시험받을 때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을 위해 봉사할 수 있다는 것은 하나님의 은혜이다. 반대로 이 세상을 살면서 더 이상 하나님에게 아무런 쓰임을 받지 못한다는 것은 저주같은 것이다. 통탄해야할 일이다. 바울은 자신이 하나님에게 더 이상 쓰임받지 못하는 일, 이것을 가장 두려워했다. 바울은 이것을 버림받는 일이라고 표현했다. 그러므로 봉사할 수 있는 기회는 은혜이다. 내게 건강이 있고, 은사가 있어서 누군가에게 빛이 되고 힘이 되어줄 수 있다면 그것은 은혜다.

봉사가 하나님의 은혜라면,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라면 우리는 이 선물을 함부러 대해서는 안된다. 때때로 은혜라는 것이 우리가 함부러 행동해도 좋다고 생각하는 사람이 있다. 이런 경우를 생각해 보자. 제가 유럽에 여행할 일이 생겨서 그 나라에 값비싼 물건을 사서 친구에게 선물로 주었다. 물론 선물이기 때문에 값없이 주었다. 그런데 받은 사람이 내가 준 선물을 함부러 대한다고 생각해 보라. 그 사람이 내가 성의를 다해 선물해준 선물을 성의 없이 대하면 이 사람의 우정에 대해서 다시 생각해 볼 것이다. 마찬가지로 예수님은 우리에게 은혜를 주셨다. 주님을 위해서도, 교회를 위해서도 봉사할 수 있는 기회를 주셨다. 이것은 은혜다. 그런데 우리가 그것을 함부러 성의 없이 대한다면 우리에게 은헤를 베풀어주신 주님의 은혜에 대한 모독인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은혜로 봉사의 기회를 주셨다. 그렇다면 우리는 이 은혜를 감사하는 마음으로 최선을 다해야 하지 않겠는가?

교회봉사의 세 번째 원리는 결산의 원리이다.

오늘성경본문은 종말에 대한 교훈과 함께 주어졌다.

7절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

언젠가 역사의 끝이 있을 것이다. 우리 인생의 끝도 있을 것이다. 인생의 지혜는 우리의 시간이 천년만년되지 않는다는 것을 의식하면서 사는 것이다. 그리고 인생의 끝에 우리는 하나님 앞에 서게 될 것이다. 하나님 앞에 서서 우리 인생을 결산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하나님은 역사의 심판자요 모든 인생의 심판자이시기 때문이다. 우리 모두는 주님 앞에 서게 될 날이 있다. 주님 앞에 서서 우리는 우리 인생을 결산하게 될 것이다. 언젠가 주님은 우리 인생을 달아보실 것이다.

그런데 주님은 무엇으로 우리의 인생을 달아보실까?

하나는 사랑으로 달아보실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 인생의 가치를 달아보시는 것은 우리의 명성이 아니다, 돈도 아니다. 우리의 지식도 아니다. 우리의 경험도 아니다. 우리의 기술도 아니다. 내가 살던 집도 아니다. 자녀들의 성공도 아니다. 하나님이 제일 먼저 우리를 달아보시는 것은 사랑이다.

그래서 7절에서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웠다고 얘기하면서 8절에서 사랑을 말한다.

8절. 무엇보다도 뜨겁게 서로 사랑할지니 사랑은 허다한 죄를 덮느니라

그리고 또 한가지는 우리의 봉사다. 하나님은 우리의 봉사로 우리 인생을 달아보실 것이다. 하나님은 내가 얼마나 가졌느냐를 달아보시는 것이 아니라, 얼마나 사람들을 섬겼느냐를 달아보실 것이다. 위대한 인생은 소유로 평가되지 않고 봉사로 평가된다. 달란트 비유에서도 달란트를 맡겼던 주인은 다시 돌아와서 달란트 맡은 종들이 달란트를 어떻게 사용했는지를 결산했다. 주님께서도 우리의 봉사를 결산하실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가 교회에서 봉사하고, 사회에서 봉사할 때에 구체적으로 우리의 어떤 것을 달아보시고 결산하시겠는가?

• 주님은 봉사의 성실성을 달아보실 것이다. 10절에서 “선한 청지기”같이 봉사하라고 하셨는데, 영어성경을 보면 “성실하게” 봉사하는 것을 뜻한다. 주님은 우리의 성실성을 살펴보실 것이다. 달란트 비유에서 예수님은 다섯 달란트, 두 달란트 맡은 사람을 칭찬하실 때, “착하고 충성되다”고 하셨다. 주님은 우리 봉사의 충성스러움, 성실함을 보실 것이다. 성경은 맡은 자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라고 하셨다. 하나님은 봉사의 결과 보다는 우리 봉사의 충성스러움, 성실함을 살펴보실 것이다.

­ 충성스러움을 평가할 수 있는 현장은 그가 어려움을 당할 때이다. 그는 어려움을 당할 때에도 그 일을 계속하는가 하는 것이다. 12절 13절을 읽어보자.

사랑하는 자들아 너희를 연단하려고 오는 불 시험을 이상한 일 당하는 것 같이 이상히 여기지 말고 오히려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여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 봉사에는 반드시 시험이 있다. 고난도 있다. 외부적인 고난도 있고, 내부적인 시험도 있다. 충성스러움은 그 때에도 내게 맡겨진 일을 계속할 수 있는가 하는 것이다. 충성스러운 사람은 계속한다. 봉사의 자리는 사실 사람 시험이 많다. 그러나 그런 봉사의 자리를 통해서 우리는 충성스러운 일꾼으로 훈련되는 기회가 된다.

• 주님은 봉사의 동기를 살펴보실 것이다. 때때로 가장 성스러운 봉사에도 추악한 인간의 동기가 숨어있을 수 있다. 제가 아는 어느 목사님이 어느날 황당한 목회경험을 얘기해준 적이 있다. 새교우가 와서 교회에서 열심히 봉사했다고 한다. 성가대에서도, 주일학교에서도 열심히 봉사를 했다. 그래서 교회 집사님들도 이 사람의 믿음에 대해서 칭찬을 하고 그랬는데, 약 6개월 지나면서 이 사람 저 사람에게 돈을 빌리고, 교회 전도사님의 전세돈도 정말 급한 일 때문이라고 빌려서는 야반도주했더라는 것이다. 어떤 사람의 봉사의 동기는 돈 때문에, 어떤 사람은 자기의 명예 때문에 봉사한다. 그러나 우리의 봉사의 동기는 11절에 나와있다. 우리 다같이 베드로전서 4장 11절을 읽어보자.

11절. 만일 누가 말하려면 하나님의 말씀을 하는 것 같이 하고 누가 봉사하려면 하나님이 공급하시는 힘으로 하는 것 같이 하라 이는 범사에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하나님이 영광을 받으시게 하려 함이니 그에게 영광과 권능이 세세에 무궁하도록 있느니라 아멘

­ 우리의 봉사 동기는 하나님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이름이 높임받는 것이다. 우리 이름을 내는 것도 아니요, 사람들에게 인정받고자 하는 것도 우리의 봉사 동기가 아니다. 사람들이 알아주지 않는다고 섭섭한 경우가 많은데, 우리는 우리 동기를 잘 생각해봐야 한다. 우리는 다른 사람들이 알아주기를 바라고 봉사하고 있는지, 아니면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봉사하고 있는지 살펴야 한다.

­ 루스 함스 칼킨(Ruth Harms Calkin) 이라는 사람이 “나는 생각한다”라는 글을 읽어본 적이 있다.

저는 생각합니다

당신은 아십니다, 주님, 밝은 조명이 비치는 곳에서

어떠한 큰 열정을 갖고 제가 당신을 섬기는가를.

당신은 아십니다. 부인회에서제가 얼마나 열심히 당신을 위해 말하는가를,

당신은 아십니다. 친교모임을 제가 장려할 때얼마나 활기에 넘치는가를

당신은 아십니다. 성경 공부에서 저의 참된 열심을

그러나 마약 당신이 물이 든 대야를 가리키시면서 허리 굽고 주름진 노부인의 못이 박힌 발을 씻겨 주라고 제게 부탁하신다면 그것도 날이면 날마다 달이면 달마다 아무도 보지 않고 아무도 모르는 방에서 그렇게 하라고 명하신다면 제가 어떻게 반응할지 저는 생각합니다

­ 우리의 동기를 테스트해볼 수 있는 좋은 기회는 아무도 없을 때이다. 그 때에도 나는 지속할 수 있겠는가 하는 것이다.

• 주님은 우리의 봉사의 태도를 살펴보실 것이다. 우리의 봉사의 태도는 군림하는 태도가 되어서는 안된다. 섬기는 자세로 봉사해야 한다. 아이들을 가르치든, 형제회를 이끌든 목장을 이끌든 봉사의 태도는 섬김이어야 한다. 10절에서 “각각 은사를 받은 대로 하나님의 여러 가지 은혜를 맡은 선한 청지기 같이 서로 봉사하라”고 했는데 여기 봉사하라는 말은 종처럼 섬기는 것을 말한다. 예수 그리스도는 당신의 제자들이 섬김으로 특징지워지기 원하셨다. 교회에서 우리가 무슨 봉사를 하든 그것은 다른 사람들을 섬기는 자세로 하는 것이다.

­ 우리가 섬기는 사람인지 테스트해볼 수 있는 한가지는 사람들이 진짜 나를 종처럼 대할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알 수 있다. 우리는 섬김을 많이 얘기하는데, 진짜 사람들이 나를 종처럼 생각하면 기분 나빠한다. “아니 나를 어떻게 생각하기에 저렇게 말하지...”하며 화를 내는 경우가 많다. 내가 예배 끝나고 교회의 청소를 하는데, 사람들이 아예 내가 청소하는 것을 당연시 할 때 내가 어떻게 반응하는가를 보면 내가 진짜 섬김의 마음을 가지고 있는지, 설익은 섬김의 사람인지를 알 수 있다. 내가 부엌에서 설거지하는데 사람들은 아예 나를 설거지 하는 사람으로 취급할 때 그때 내가 어떤 반응을 보이느냐 하는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가 이런 종들이 서로 섬기는 공동체가 되기를 원하셨다. 10절 마지막을 자세히 보시면 “서로” 봉사하라고 하셨다.

건강한 교회는 성서적인 봉사의 원리가 살아있는 교회다. 성경적인 봉사의 원리는 은사의 원리로 봉사하는 것이다. 청지기의 자세로 은혜로 봉사하는 것이다. 우리의 봉사는 언젠가 하나님 앞에 평가받을 것을 염두에 두고 봉사해야 한다. 우리에게 봉사의 성실성이 있는지, 봉사의 동기가 올바른지, 종의 태도로 봉사하고 있는지를 평가해보실 것이다.

당신의 봉사는 어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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