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28.

막15:42-47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다-09.6.28

폴 포츠 동영상

우리는 방금전 폴 포츠의 얘기를 동영상으로 보았다. 이 사람은 무명의 사람이었다. 휴대폰을 판매하는 사람이었다. 그러나 어느 날 일약 스타가 되었다. 그날 대회에 참가할 것인가 말 것인가를 심각하게 고민했다고 했다. 그 결정을 동전던지기로 결정했다고 한다. 그날의 결정이 이 사람의 인생을 바꾸어 놓았다.

오늘 설교제목은 <브리튼 갓 탤런트>(Briton got a talent)의 여자 심사위원의 멘트에서 따왔다. 그녀는 그날 폴 포츠를 가리켜 석탄을 하나 발견했다고 말하고, 곧 그 석탄은 다이아몬드로 바뀔 것 같다고 얘기했다. 오늘 성경본문에서도 석탄 같은 모습으로 있다가 다이아몬드로 바뀐 한 사람이 나온다. 이 사람의 이름은 아리마대 요셉이다. 요셉은 이스라엘에서 흔한 이름이기에 당시에 사람을 구분지어 부를 때, 그의 출신지역을 같이 언급했다. 아리마대 요셉이라 함은 아리마다 출신 요셉이란 뜻이다. 데오르나르도 다 빈치가 빈치 출신 레오나르도란 뜻 아닌가? 아리마대는 예루살렘 북동쪽에 있는 작은 마을로서 구약에서는 <라마>라고 불리는 사무엘의 고향이기도 하다.

이 사람은 예수님의 마지막 십자가 사건 때 갑자기 이름이 튀어나와 두각을 나타냈다. 사실 이 사람은 열두제자 그룹에 속하지는 않았지만 요한복음 19장 38절에서 이 요셉을 가리켜 예수의 제자라고 말한다. 어느 시점인지 모르지만 이 사람은 예수의 가르침을 받아들였고, 그 가르침을 따르는 예수의 제자가 되었다. 그러나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마지막 시점까지는 이 사람의 이름은 전혀 언급되지 않는다. 다시 말하면 요셉은 무명의 제자였다. 무명의 제자였다가 예수께서 십자가를 지시는 구원의 역사에 있어서 가장 의미 있는 공헌을 한다. 심지어는 예수님의 열두제자들도 다 도망가 버린 상황에서 갑자기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등장한다. 그리고 우리는 이제 예수의 십자가 사건을 묵상할 때마다 이 사람도 함께 묵상하게 된다.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된 상황이었다.

석탄 같은 인생이 많다. 폴 포츠는 브리튼 갓 탤런트에 나오기 전에 평범한 휴대폰 판매원에 불과했다. 내세울만한 외모도 갖지 못했다. 말도 어눌하게 하는 사람이었다. 재정적으로는 오히려 빚만 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인생에 빛나는 구석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어 보였다. 그는 그렇게 살고 있었다. 아리마대 요셉은 예수를 따르는 수많은 무리들 중에 한 사람이었다. 이름이 단 한 번도 언급되지 않은 무명의 제자였다. 석탄 같은 인생이었다. 우리들도 그럴 수 있다. 수많은 사람들 중에 그저 한 사람, 내세울 것이 없는 한 사람일 수 있다. 그러나 우리는 믿는다. 석탄 같은 인생도 얼마든지 다이아몬드 같은 인생으로 탈바꿈할 수 있다고 믿는다.

다만 다이아몬드 같은 인생을 어떻게 정의하느냐가 다를 뿐이다. 단지 세상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을 다이아몬드 같은 인생이라고 한다면 아리마대 요셉은 이에 해당하지 않는다. 왜냐하면 그는 이미 유명한 사람이었기 때문이다. 오늘의 성경 마가복음 15장 43을 보면 이 사람은 “존경받는 공회원”이라고 말한다. 영어성경에서는 “유명한 공회원”이라고 표현한다. 공회원은 국회의원과 같은 사람들이다. 그는 정치인이었고, 정치인 중에서도 이미 이름을 떨치고 있었던 사람이었다. 그는 사람들에게 존경받는 정치인이었다.

그는 세상에서 이미 이름을 떨치고 있었다. 그러나 세상에서 유명하다고 다 다이아몬드 같은 인생은 아니다. 지난 금요일에 팝의 황제 마이클 잭슨이 심장마비로 사망해 전 세계에 충격을 안겨주었다. 가난한 크레인 운전사의 아홉 아들 중에 7번째 아들로서 찢어지게 가난한 집에서 세계 최고가수가 된 마이클 잭슨은 어떤 면에서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되었다고 할 수 있다. 재정난으로 자기의 집을 팔아넘긴 후에도 그가 죽기 전에 렌트해서 살던 집은 한 달에 US달러로 10만 불짜리 집이었다고 한다. 그는 사회적으로 유명한 사람이었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을 다이아몬드 같은 인생이라 볼 수 있을까요? 그와 19개월 동안 결혼생활을 했던 리사 마리에 의하면 결혼생활 내내 화장하지 않은 모습으로는 절대 부인 앞에 나타나지 않았다고 한다. 심지어는 침실에서도 항상 화장한 모습이었다고 한다. 수십 번의 성형수술을 통해 본래의 모습과는 전혀 다른 얼굴을 가지게 된 마이클 잭슨은 수술 부작용으로 코뼈가 내려 앉아 얼굴전체를 가리는 마스크를 쓰고 다니기도 하고 병균을 막기 위해 산소관에서 잠을 자기도 했다. 엘비스 프레슬리 역시 죽을 때까지 누군가가 자장가를 불러주지 않으면 잠을 자지 못했다고 한다.

성경은 다이아몬드 같은 인생이 단지 사회적으로 유명해지는 것이라고 말하지 않는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이미 이름이 정평이 난 공회원이었다. 여기 학생들 중에 어떤 이들은 훌륭한 정치인이 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유명한 의사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고, 작가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고, 돈을 많이 버는 사업가가 되고 싶은 사람도 있을 것이다. 그러나 사회적으로 성공한 사람을 다이아몬드 같은 인생이라 할 수 있을까? 우리가 아리마대 요셉을 기억하는 이유는 그가 존경받는 정치인이었기 때문이 아니다. 여러분은 인생의 꿈을 가져야 한다. 그러나 단지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 그 이상을 생각해보아야 한다. 돈을 많이 버는 것, 세상에서 유명해 지는 것, 내가 원하는 직업과 직장 을 갖는 것, 내가 갖고 싶은 집을 사는 것... 그 이상을 생각해야 한다. 다이아몬드 같은 인생을 평가하는 기준은 세상적으로 성공하는 것이 아니다.

또 우리는 오늘 아리마대 요셉을 기억하는 이유가 단지 이 사람이 경건한 신앙인이었기 때문만도 아니다. 이 사람은 사회적으로 높은 지위에 있으면서도 경건한 신앙인이었다. 본문에서는 이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자>라고 한다. 요한복음 19장에서는 이 사람을 예수님의 제자라고 한다. 그는 세상적으로 유명했지만, 동시에 경건한 신앙인이었다. 그러나 이 사람은 오늘의 사건이 있기 전에도 이미 경건한 사람이었고, 이미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고, 이미 예수의 제자였다. 오늘의 이전의 모습이 우리의 주목을 끄는 것은 아니다. 그가 경건한 신앙인이었다는 것이 그의 인생을 빛나게 했던 것은 아니다. 이 사람의 경건한 성품이 우리가 그를 다이아몬드라고 부르는 것이 아니다. 신앙생활을 하면서도 하나님 입장에서 그저 석탄 같은 인생일 수도 있다는 얘기다.

조심스러운 얘기지만, 우리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이, 교인이라는 것이 세상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인상도, 의미도 주지 못할 수 있다. 우리끼지 좋아서 모이고 만나고 예배드리는 것이지, 우리가 얼마나 많이 모였느냐, 예배가 어땠고 설교가 어땠고, 예배 후에 나오는 우리 식사가 어땠느냐가 우리 주변 사람들에게는 아무런 인상도 주지 못한다. 그런데 더 두려운 것은 세상 사람들 뿐 아니라 하나님에게조차 아무런 인상을 남지기 못할 수 있다는 것이다. 이 세상에는 몀목상의 기독교인들, 이름뿐인 기독교인들이 많다. 어디가나 교회 다닌다고 얘기하고, 예수의 제자라고 얘기하고, 교회 얘기하고 성경 얘기하는데, 하나님 나라 입장에서 이 사람을 기억할 만한 아무 것도 없을 수 있다. 아미마대 요셉은 오늘의 사건이 있기 전에도 충분히 경건한 사람이었고, 예수의 제자였고, 하나님 나라를 기다리는 사람이었다. 우리들도 충분히 경건하고, 충분히 기독교인이고, 교인일 수 있으면서도 그저 석탄 같은 인생일 수 있다는 것이다.

예?

그렇다면 아리마대 요셉이 다이아몬드처럼 빛나는 인생으로 탈바꿈할 수 있었던 요인은 무엇인가? 다시 한 번 성경말씀을 보자. 43절 말씀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와서 당돌히 빌라도에게 들어가 예수의 시체를 달라 하니 ...”. 요셉은 총독 빌라도를 찾아가서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했다. 그리고 이 행위는 “당돌한” 행동이라고 묘사한다. 당돌하다는 것은 담대하는 뜻이다. 두려움을 무릅쓰고 요청했다는 말이다. 이것은 용기이다. 석탄이 다이아몬드가 디는 순간이었다. 아리마대 요셉이 다이아몬드가 된 것은 바로 이 신앙적인 용기였다. 사실 이때까지 아리마대 요셉은 자기가 예수의 제자인 것을 숨기고 있었다. 요한복음 19:38을 보자.

아리마대 사람 요셉은 예수의 제자이나 유대인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더니 이 일 후에 빌라도에게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기를 구하매 빌라도가 허락하는지라 이에 가서 예수의 시체를 가져가니라

그 당시의 사회적 분위기는 예수를 매도하는 분위기였다. <유대인을 두려워하여> 예수의 제자인 것을 숨겼다고 했다. 예수님 당시 예수님을 따르는 무리들도 많았지만, 유대 지식층과 종교인들 중에는 예수를 반대하는 사람들도 많았다. 심지어는 틈만나면 예수를 비판하고 제거해야한다고 목소리를 높이는 이들도 많았다. 이런 사회적인 분위기를 아는 아리마대 요셉은 그를 숨기고 있었다. 자기가 예수의 가르침을 따르는 제자라는 것이 밝혀지면 사회적인 모든 것을 잃어버릴지도 모른다는 두려움 때문이었다.

두명의 마틴

교회의 타락이 극도에 이르고 종교개혁의 바람이 불 때인 중세기의 일이다. 바셀에 살던 마틴(Martin of Basel)이라는 믿음의 사람은 성경의 대진리를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타락했던 당시의 교회의 권세가 두려워서 감히 그 깨달은 바를 공개적으로 발표하거나 주장하지를 못했다. 그 대신에 그는 자기 거실의 벽돌 하나를 빼어 양피지(가죽 종이)에다 다음과 같이 쓴 것을 넣어 놓았다. “오, 자비로우신 예수여, 나는 주님의 보혈 공로로만 구원받을 수 있음을 압니다. 오직 주님의 십자가의 은혜를 믿음으로써 만 구원을 받음을 압니다. 거룩하신 예수여, 나를 위해 희생하신 것에 감사를 드립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나는 주님을 사랑합니다" 바셀의 마틴이 써서 감추어 둔 이 글을 약 200년 후에 발견이 되었다.

그러나 거의 같은 시대에 같은 이름의 사람이 또 하나 있었으니, 그의 이름은 마틴 루터였다. 그리스도의 진리를 발견한 마틴 루터는 단호하게 말을 했다. “나의 주님은 천사들과 사람들 앞에서, 그리고 아버지 하나님 앞에서 나를 시인하셨는데, 왜 내가 세상의 군왕들 앞에서 나의 주님을 시인하기를 두려워하리요 ?" 드디어 마틴 루터의 목숨을 건 결단의 행동으로 인하여 하나님의 영광과 뜻이 이 세상에 퍼졌고, 세상은 밝아지고 교회는 개혁을 일으켜 새롭게 회복되었으며 사람들은 구원을 받게 되었던 것이다. 당신은 어떤 쪽의 마틴처럼 살고 있는가?

두명의 마틴 중에서 마틴 루터가 용기를 내어 목소리를 내었을 때, 그는 교회사의 다이아몬드가 되었다. 그의 종교개혁의 기치로, 존 칼빈, 쯔빙글리를 비롯한 수많은 종교개혁가들이 나오게 되었다. 그리고 교회는 다시한번 복음적인 신앙으로 돌아올 수 있게 되었다.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용기를 내어 예수의 시체를 달라고 요청했다. 그동안 예수의 제자인 것을 숨겼으나 이제는 공개적으로 자신이 제자인 것을 밝힌 것이다. 그래서 성경은 ‘당돌히’ 혹은 ‘담대히’라는 단어를 쓰고 있다. 요셉이 빌라도를 찾아가는데는 용기가 필요했던 것이다. 요셉은 자기가 준비해둔 무덤에 예수를 안치시켰다. 그러나 여러분, 기억하셔야할 것이 있다. 아리마대 요셉의 무덤은 영원히 부활의 상징이 되었다는 것이다. 예수님이 부활하셔서 더 이상 그 무덤에 계실 필요가 없었기 때문이다. 아리마대 요셉의 빈무덤은 이제 기독교사에 가장 확실한 부활의 증거가 되었다. 이 사람이 용기는 기독교사의 가장 빛나는 다이아몬드가 되었다. 우리는 부활절 때마다 아리마대 요셉이 준비했던 예수의 빈무덤을 기억한다.

그뿐만이 아니다. 이 사람이 이런 용기를 내자 다른 숨어있던 사람들도 용기를 내게 되었다. 요한복음 19:38의 아리마대 요셉의 이야기에 이어 39절에서는 니고데모 얘기가 나온다. 니고데모는 요한복음 3장에서 한 밤중에 예수를 찾아왔던 인물이었다. 그도 공회원이었고, 아마도 그도 예수를 믿는 이였고, 그도 사람들이 두려워 그것을 숨기고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아리마대 사람 요셉이 용기를 내자 그도 용기를 내었다. 숨었던 사람이 자기를 밝혔다.

요한복음 19:39 일찍이 예수께 밤에 찾아왔던 니고데모도 몰약과 침향 섞은 것을 백 리트라쯤 가지고 온지라

우리들에게도 이런 용기가 필요하지 않은가? 주변 사람들이 내가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밝혀지는 것이 두려워서 식사기도조차 하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혹시나 놀림감이 될까해서 자기가 믿고 있는 예수에 대해서 사람들에게 얘기하지 못한다. 전반적인 사회적 분위기가 우리의 신앙에 대해서 우호적이 아닐 수 있다. 기독교인들의 문제점, 교회의 문제점들을 실랄하게 얘기하는 사람들 사이에 우리가 처할 수 있다. 그럴 때면 우리들도 아리마대 사람 요셉처럼 우리가 예수믿는다는 것을 숨길 수 있다. 그러나 우리가 정작 두려워해야할 분은 오직 하나님이시다.

영국 국왕의 대관식이 거행되고, 영국의 왕들과 위대한 사람들이 안장되어 있는 웨스트민스터 대사원에는 로렌스 경의 기념비가 있는데 거기에는 다음과 같은 글이 새겨져 있다. “이 사람은 하나님을 아주 두려워하며 살았기 때문에 사람들을 거의 두려워하지 않았다 ! " 유명한 요한 빅커스토스(John L. Bickprstoth)가 죽은 후에 그의 잠겨진 책상의 서랍에서는 그의 성공의 비결인 다음과 같은 기도문이 발견되었다. “오, 주님, 오직 주님만을 두려워하고 다른 아무것도 두려워 하지 않는 용기를 허락해 주옵소서 ! "

일본인 그리스도인으로 ‘스키하라 치우네’라는 이름을 가진 이가 있었다.

일본의 전통적인 사무라이 가문에서 태어나 예수를 믿게 된 그는 기도 중에 외국 대사가 되어 복음을 열방에 전하라는 소명을 받는다. 1930년 그는 러시아 근처 리투아니아의 총 영사로 임명되었다. 1940년 7월 어느 아침 그는 인생의 큰 반전을 맞게 된다. 그 아침 그의 집무실 뜰에는 폴란드에서 나치 게슈타포의 체포를 면하기 위해 도망치는 유대인들 2-3백 명이 모여 있었다. 두려움에 가득 차 있었던 그들은 모두 일본 비자를 발급 받기를 원했다. 일본 비자만 받으면 그들은 다른 나라로 도망칠 수 있었기 때문이었다. 그러나 스키하라가 총영사가 그들에게 비자를 발급해 주기 위해서는 중앙 정부의 인가가 있어야 했다. 그는 즉시 동경에 전문을 보내서 발급 허가를 요청했지만 세 번 씩이나 중앙 정부는 이를 거절했다.

그는 잠시 기도하고 주님의 인도를 구하면서 성경을 읽는다. 그날 아침 펼쳐진 말씀은 사도행전 5:29의 “사람보다 하나님께 순종하는 것이 마땅하니라”는 말씀이었다. 그는 이제 어떤 대가를 치르고서라도 이 유대인들을 구하는 것이 하나님의 뜻임을 확신했다. 사무라이 출신의 그리스도인 스키하라는 그가 비겁하지 않고 주께 순종할 수 있는 용기를 달라고 다시 기도합니다. 그리고 그는 기도한 다음 비자 발급을 시작했다. 그와 그의 아내 그의 아들 그리고 그의 몇 동료들은 중앙 정부 관리들이 출동해서 그들을 해직하고 끌어내기까지 약 28일간 무려 6,000명의 유대인들에게 비자를 발급할 수 있었다.

이로 인해서 그는 그와 그의 가족은 많은 어려움을 당했지만 후일 이스라엘 국가가 예루살렘 근교에 유대인 학살 기념관 야드 받셈을 건립하였을 때 이스라엘의 은인으로 그와 그의 가족이 초청받아 오게 된다. 그리고 이 결정에 대하여 후회가 없었느냐는 한 유대인 기자의 질문이 있었을 때 가족을 대신하여 스키하라의 아들은 이렇게 대답했다고 한다. “살아계신 하나님께서 저희 아버지께 말씀하셨고, 저의 아버지와 저희들은 기꺼이 순종했을 따름입니다. 아무런 후회가 없습니다. 우리를 통해 당신들(유대인들)을 인도하신 살아계신 하나님이 또한 우리의 남은 날도 인도하실 것을 믿고 있으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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