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6. 14.

막15:20-22 억지로 진 십자가-09.6.14


v20. “...십자가에 못박으려고 끌고 나가니라”

마가복음은 이 한 구절로 끝내지만, 마태, 누가, 요한복음을 종합해 보면, 예수께서 십자가 지시기까지의 행적은 14개의 장면으로 구성되어 있다. 이것을 비아 돌로로사(via dolorosa)라는 라틴어로 표현하는데,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시고 가신 길을 표현한 것이다.

비아 돌로로사

제1지점. 예수님이 본디오 빌라도 재판정에서 재판을 받으시다

제2지점. 로마 군사들이 예수님에게 가시관을 씌우고 홍포를 입히고 희롱하다

제3지점.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가다 처음 쓰러지다.

제4지점. 예수님이 성모 마리아를 만나시다.

제5지점. 구레네 사람 시몬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골고다 언덕까지 대신 지다.

제6지점. 베로니카 여인이 물수건으로 예수님의 얼굴을 닦아주시다.

제7지점. 예수님이 두 번째 쓰러지시다.

제8지점. 예수님이 “예루살렘의 딸들아 나를 위하여 울지말고 너희가 너희 자녀를 위하여 울라”라고 말씀하시다.

제9지점. 예수님이 세 번째 쓰러지시다.

제10지점. 예수님의 옷을 벗기시다.

제11지점. 예수님이 십자가에 못박히시다.

제12지점.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운명하시다.

제13지점. 예수의 시신을 내려놓여지다.

제14지점. 아리마대 요셉이 자기 무덤에 예수를 장사지내다.

예수님이 십자가를 지고 가는 과정에서 자주 쓰러지시자, 로마 군인들은 지나가던 행인이었던 한 사람을 불러다가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지고 골고다까지 가게 하신다. 이 사람이 구레네 사람 시몬이다. 구레네는 지금의 북아프리카의 리비아에 속해 있는 도시였고, 당시에는 로마의 식민지였다. 여기에도 많은 유대인들이 모여 살고 있었는데, 시몬이란 이름이 유대식 이름인 것으로 보아, 시몬은 구레네(지금의 리비아) 지역에 이민생활을 하던 유대인인 것으로 추정된다. 아마도 시몬은 유월절에 맞춰 아프리카에서 고국 팔레스틴의 예루살렘에 도착하였을 것이다. 그러나 뜻하지 않게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게 되었다.

구레네 시몬이 그날 십자가를 지게 된 것은 스스로 원했던 것이 아니었다. 그는 “지나가는 길”이었다. 지나가다가 로마 군인들에게 붙잡혀서 예수의 십자가를 대신 메고가게 된 것이다. 성경은 “억지로” 같이 가게하였다고 기록한다. 지고 싶어서 진 것이 아니라, 로마 군인이 명령하니까 억지로 지게된 것이다. 당시 로마 군인들은 식민지 사람들에게 필요에 따라 심부름을 시킬 수가 있었다. 시몬의 십자가는 억지로 진 십자가였다. 우리는 시몬의 얘기에서 몇가지 교훈을 배울 수 있다.

1. 우리 인생에도 우리가 원하지 않는 억지로 짊어져야할 십자가가 있다는 것이다.

내가 지고 싶은 십자가는 아닌데, 아니질 수 없는 상황이 되어서 억지로 져야되는 십자가들이 있다는 얘기이다.

어떤 이는 평소에 건강하였으나 불의의 사고를 만나 가령 자동차 사고 등을 만나 크게 부상하여 그만 오랫동안 자리에 누워서 치료를 받을 수밖에 없게 된다. 어떤 이는 불치의 병으로 말미암아 혹 일생을 불구의 몸으로 살아갈 수밖에 없다. 어떤 어린이들은 어렸을 때에 부모를 잃고 일생을 고아로 살수밖에 없다. 어떤 젊은 자매들은 젊어서 남편을 읽고 어린아이들을 데리고 홀로 고생하면서 살수밖에 없다. 어떤 이들은 늙어 기력은 쇠약하여졌는데 부양할 자녀가 없다. 어떤 이들은 남달리 고독의 십자가를 지고 살아간다. 어떤 이들에게는 자녀에게 특별한 어려움이 있어서 억지로 지고가는 짐을 느낄 때가 있다.

모든 것을 포기하고 싶은데, 때로는 아이들을 생각해서 억지로 가정이나 직장, 교회생활을 이끌고 가야할 때도 있다. 한 미국작가의 글을 읽었는데, 한국아이 하나를 입양해서 키웠는데, 나중에 이 아이가 극심한 자폐아인 것이 밝혀졌고 이것 때문에 이 부부가 심한 갈등과 고통 속에 처하게 되었는데, 결국 신앙의 힘으로 어떻게 극복해 내었는지 기록한 글을 읽은 적이 있다.

우리 인생에는 우리가 의도하지 않은 짐들, 내가 억지로 짊어지게 된 십자가가 있을 수 있다.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는 예수의 십자가는 억지로 진 십자가였다.

2. 종종 억지로 진 십자가는 우리 인생에 커다란 축복을 가져오는 기회가 된다

억지로 예수의 십자가를 짊어지게된 시몬의 마음 속에 얼마나 커다란 불평이 있었겠는가? 그는 “재수없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냥 지나가는 길인데 재수가 없어서 이렇게 되었다고 생각했을 것이다. 그러나 성경을 읽어보면 이 일이 시몬의 가정에 엄청난 축복을 가져오게된 것을 알 수 있다.

오늘 읽은 마가복음에 기록한 대로 그는 알렉산더와 루포의 아버지라 하였다. 이렇게 쓴 것을 보니 당시 교회 안에서 알렉산더와 루포를 잘 알던 모양이다. 또한 로마서 16장 13절에는 바울이 로마교회에 편지할 때에하였다. 이 구절로 미루어 보면 그의 아들 루포는 그 때에 로마에 살았으며 잘 믿을뿐더러 그 어머니는 바울을 잘 도운 여인이다. 시몬의 아들들과 아내가 초대교회의 중요한 일꾼으로 하나님께 쓰임받고 있는 장면을 볼 수 있다.

가장 보람있는 인생은 하나님께 쓰임받는 인생이다. 나를 창조하신 하나님께서는 내 인생에 목적을 두시고, 나를 통해서 무언가 일하시기를 원하신다. 하나님께서 일하시는데 하나님은 우리를 그분의 손으로, 발로, 입으로 사용하기를 원하신다. 그런데 바로 시몬의 가족들은 하나님께 귀하게 쓰임받는 가족이 되었다. 시몬은 뜻하지않게 예수의 십자가를 짊어지게 되었지만, 이 일이 기초가 되어 그의 가족이 하나님을 잘믿는 가정이 되었을 뿐 아니라, 초대교회의 귀한 일꾼으로 쓰임받게 되는 신앙의 명문가가 될 수 있었다.

시몬자체는 어땧는가? 사도행전의 역사를 보면 초창기에는 예루살렘 주변의 유대인들에게만 복음이 전파되었다. 그러나 점차 시간이 지남에 따라서 복음이 비유대인들에게도 전파되는데, 그 최초의 장소가 안디옥이었다. 그런데 이때 비유대인 중에서 복음을 가장 먼저 받아들인 사람들이 바로 구레네 사람들이었다.

사도행전 11:20에 보면 구레네 사람들이 안디옥에 와서 정착하면서 그리스도인이 되었고, 이 안디옥 교회의 지도자 가운데 13:1에 보시면 구레네 사람 루기오와 더불어 니게르라 하는 시므온이란 사람이 등장하는데, 학자에 따라서는 이 시므온이 예수님의 십자가를 진 시몬이라고 주장하는 사람들이 있다.

왜냐하면 안디옥 교회에 구레네 출신 그리스도인들이 몰려왔다는 점, 시므온이란 이름이 유대식으로는 시몬이라는 점, 니게르라는 것은 검다는 뜻으로, 아프리카에서 살다왔기 때문에 시몬의 피부색이 흑인처럼 보였기 때문에 붙여진 별명이었을 것이라고 생각한다면 충분히 가능성이 있다는 점, 그리고 바울이 로마서에서 시몬의 아내를 “내 어머니”라고 말했는데 이때는 로마를 방문하기 전에 보내는 편지인데, 그 이전 어디선가 바울은 시몬의 가족을 만났다는 것을 전제하는데, 그곳이 바로 안디옥 교회였을 가능성이 가장 높다는 점 등을 생각하면 안디옥 교회의 시몬은 우리가 알고 있는 구레네 사람 시몬일 가능성이 매우 많다. 그렇다면 시몬은 초대교회의 기독교 지도자 중의 한 사람이 되었다는 것이다.

처음에는 억지로 십자가를 졌는지 모르지만, 억지로 십자가를 진 사건이 자신에게나 그의 가정에 놀라운 영적인 축복을 가져왔다. 이것이 우리 인생에도 종종 일어나는 일들이다.

요셉을 생각해 보라. 그는 행복 된 가정에 태어나 부모의 총애를 받으며 편안히 단락 한 가정에서 자라고 있었다. 그러나 그는 소년시절에 형들의 시기를 받아 갑자기 큰 억지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하루 아침에 종으로 팔려서 멀리 애굽으로 어린 몸이 끌려가게 되었다. 가정에서 온갖 사랑을 받던 소년은 갑자기 남의 집에 종이 되어 새벽부터 저녁까지 여러 가지로 고역을 당할 수밖에 없었다. 요셉도 물론 처음에는 마음에 큰 불평과 분노를 가졌을 줄 생각된다. 그러나 그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모든 것을 참으며 꾸준히 시위대 장관 보디발의 집에서 종노릇을 잘하였다. 그리하여 수 년 후에는 주인의 심임을 얻어 그 가정의 모든 일을 관리하는 가정 총무가 되었다.

그러나 호사다마라고 그 때에 보디발의 아내를 통하여 젊은 요셉에게는 큰 정욕의 시험이 들어왔다. 그러나 그는 오직 하나님을 두려워하는 신앙으로 담대히 이겼다. 불행하게고 그 결과는 음란과 투기로 가득 찬 여인의 미움을 받고 억울한 누명을 쓰고 그만 감옥에까지 던짐을 받았다. 말하자면 두 번째 억지의 십자가를 지게 되었다. 그러나 그는 믿음으로 모든 것을 참으며 죄수로서 가장 착한 죄수가 되었다. 마지막에는 하나님께서 어떻게 갚아 주신 것을 여러분이 잘 아시는 바이다. 요셉도 역시 억지의 십자가를 두 번씩이나 졌으나 그는 믿음으로 굴욕과 고통의 십자가를 축복과 영광의 십자가로 바꾸었다.

요셉뿐이 아니다. 우리는 동방의 의인 욥의 이야기를 안다. 그는 실로 다복한 분이었다. 재산도 많았고 자녀도 십 남매나 되었다. 그러나 가는 갑자기 하루아침에 큰 환난을 당하여 재산도 사라졌고 그 아름답던 자녀들까지 잃게 되었다. 보통 십자가가 아니라 실로 인간으로서는 상상도 하기 힘든 고통의 십자가이었다. 그러나 그는 그러한 가운데서도 낙심하지 아니하고 반항하지 아니하고 많은 번민(煩悶)과 고뇌(苦惱) 가운데서도 끝까지 신앙을 지키며 하나님을 탐구하였다. 그리하여 그는 이 말할 수 없는 고통을 통하여 마지막에는 하나님의 음성을 친히 들었고 그 심령이 하나님을 뵙게 된 것이다. 그리고 또한 모든 다른 방면의 축복도 갑절이나 받았다. 욥이 진 억지의 십자가도 결국은 감사와 영광의 십자가로 변하였다.

이처럼 억지로 진 십자가는 처음에는 이해가 되지 않아도, 시간이 지나면 그것이 나에게 커다란 축복으로 되돌아오는 경우가 많다.

중국 대나무 가운데 심으면 4년 동안 자라지 않는 종이 있다. 작은 싹이 나오면 그것으로 끝이다. 잡초를 제거하고, 물을 주고, 땅을 갈고, 자양분을 공급하고 온갖 노력을 다해도 변화는 일어나지 않는다. 5년째 되는 해에 이 별난 중국 대나무는 한꺼번에 24m까지 자란다. 그 전까지는 모든 성장이 땅 밑의 뿌리에서 일어난다. 일단 뿌리를 내리면, 모든 성장이 땅 위에서 이루어지고 냉소하던 사람들에게 보란 듯이 자라난다. 이처럼 우리는 하나님의 축복의 때를 모른다. 그러나 지금 내가 억지로 감당하는 십자가는 언젠가 하나님의 축복으로 되돌아올 것을 믿는 믿음이다. 히브리서 기자는 그래서 이렇게 말한다.

히브리서 11:6 믿음이 없이는 기쁘시게 못하나니 하나님께 나아가는 자는 반드시 그가 계신 것과 또한 그가 자기를 찾는 자들에게 상 주시는 이심을 믿어야 할지니라

3. 때때로 억지로 진 십자가는 주님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회가 된다.

시몬은 구레네 즉 아프리카의 리비아에서 온 사람이다. 아마 유대인이 명절인 유월절이어서 온 성지순례객이었을 것이다. 멀리 살았기 때문에 팔레스탄 땅에 자주오지 못했을 것이고, 근간에 이스라엘 땅에서 활동하고 계셨던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별로 듣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예루살렘 방문시에 로마 병정들이 한 유대청년의 십자가를 대신 짊어지라고 했을 때, 처음에는 그저 불평스러웠을 것이다.

그런데 나중에 예수님에 대한 이야기를 듣게 되었을 때에 그분이 바로 온 인류의 죄를 대신하기 위해서 오신 구세주이며, 메시아라는 사실을 알게 되었을 때, 그는 자기가 억지로 진 십자가가 얼마나 영광스러운 기회였는가를 생각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저 불평스럽고 짜증나는 재수 없는 사건이 아니라, 영광스러운 구세주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회였다는 것을 생각하고 감사하고 감격해하지 않았겠는가?

이처럼 당시에는 그저 지겹고 힘들고 고통스러운 일인지 모르지만,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회요, 하나님 나라를 위해서 위대하게 기여하는 기회가 될 수도 있다는 것을 기억할 필요가 있다. 시몬은 자기도 모르는 사이에 인류 구원을 위한 예수님의 구원사역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고 있었다. 그가 억지로 진 십자가는 사실은 그의 십자가가 아니었다. 예수님의 십자가였는데, 그가 동참한 것이다.

우리가 생각해보아야할 것이 있다. 우리가 억지로 감당해야하는 일들을 우리들은 우리 십자가라고 생각할지 모른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우리 십자가가 아니라 그리스도의 십자가이다. 그리스도가 남겨두신 고난에 우리가 동참하는 것이다. 바울 사도는 골로새서 1장에서 교회를 위해서 받는 고난을 “그리스도의 남을 고난을 내 몸에 채우노라”라고 고백했다

이제 예수님은 육체적으로 다시 십자가를 지시지 않는다. 그러나 예수님은 교회를 자기 몸이라 하셨다. 그리고 우리가 교회를 위해서 고난받고, 헌신하는 것을 자신의 고난에 동참하는 것으로 간주해주신다. 때때로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우리가 억지로 감당해야할 눈물의 시간도 있다. 때로는 목장교회사람들과 적응하는 것이 너무나 힘겨울 수 있다. 때로는 교회를 세우는 과정에서 사람들 때문에 마음에 시험이 들 때도 많이 있다. 그래서 도망가고 싶고, 피하고 싶은데, 그러면 우리는 성장하지 못한다. 때로는 사람들이 힘들고 괴로워도 억지로라도 우리의 십자가를 져야한다. 그래야 우리가 성장하고 변한다.

때때로 우리가 진 억지로 감당해야하는 것들은 때로 지루하고, 평상적인 것들일 수 있다. 매일같이 누군가를 씻기고, 밥먹이고, 옷입히고 활동하는 것들을 도와주고 하는 등 평범한 하루 하루일 수 있다. 억지로 지는 십자가가 항상 비장한 것들만 있는 것들은 아니다. 아주 작고 사소한 하루 하루가 우리가 감당해야하는 억지로 져야할 십자가일 수 있다.

그런데 여러분, 그 작은 일상들이 영광스러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회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으라. 구레네 사람 시몬에게, 그날은 그저 평범한 하루였을지 모른다. 그러나 그날은 일생일대에 가장 위대한 하루였다. 이처럼 무심코 우리가 감당한 십자가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 기회가 되었던 것이다.

우리가 예수님을 위해 살다보면 억지로 감당해야할 십자가가 많다. 그러나 믿으라. 이것이 그리스도의 고난에 동참하는기회요, 예수님께서 이것을 언젠가 반드시 기억해주시리라는 것을...

2차 세계 대전이 끝난 후 영국 군인들이 사랑하는 고국으로 돌아오는 날, 아침부터 런던 거리에서는 전쟁에서 승리하고 돌아오는 군인들을 환영하기 위하여 수많은 시민들이 몰려들었습니다. 영국의 상, 하원 의원들과 귀족들이 새벽부터 길 양쪽에 자리를 잡고 기다리고 있었고 영국 여왕이 자리에 앉자 마침내 영국 군인들의 개선 행진이 시작되었습니다. 그 행렬의 처음에는 육군이 앞장서고 뒤를 이어 해군과 공군이 따르며 해병대가 지나갔습니다.

마지막으로 한 작은 부대가 입구에 들어서자 갑자기 영국 여왕을 비롯해 귀족들과 서민들이 벌떡 일어섰습니다. 그리고 지나가는 그 작은 부대를 향해 한없이 박수를 칩니다. 그 작은 부대는 상이(傷痍) 군인들로 전쟁터에서 싸우다가 팔과 다리를 잃어버리거나 눈 혹은 몸뚱이 한 부분을 잃어버린 군인들로 이루어진 부대였습니다. 그들이야말로 개선 행렬의 진정한 스타들이었습니다.

이 땅에서의 모든 삶이 끝나고 역사의 주인이신 살아 계신 하나님 앞에 서는 그날에는 앞의 상이 군인들처럼 예수님과 복음 때문에 고난을 받았던 사람들이 바로 주인공일 것입니다.

오직 너희가 그리스도의 고난에 참예하는 것으로 즐거워하라 이는 그의 영광을 나타내실 때에 너희로 즐거워하고 기뻐하게 하려 함이라 -베드로전서 4: 1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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