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사기범이 인터넷에서 자살 시도자를 상대로 `독극물을 팔겠다'는 광고를 올리자 5개월만에 30여명이 구매 의사를 밝힌 충격적인사실이 경찰 조사에서 드러났습니다.
지난 4월 27일 신인배우 우승연이 스스로 목숨을 끊으면서, 최근 8개월새 무려 연예인 9명이 세상을 떴습니다. 탤런트 안재환은 지난해 9월 사업실패와 사채빚 때문에 자신의 차 안에서 연탄을 피워놓고 자살했습니다. 곧이어 지난해 10월 '국민배우' 최진실이 목숨을 끊었습니다. 악플, 사채루머 등이 원인인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올 3월엔 탤런트 장자연이 목매 자살했는데, 성상납 강요, 폭행 등 연예계에 숨겨진 비리 때문이라 합니다. 뿐만 아니라 지난해 하반기 이후 장채원 김지후 이서현 김석균 이창용, 그리고 우수연 등 신인 혹은 무명 연예인들이 잇따라 목숨을 끊었습니다.
외국에서도 며칠 전에는 영국 인기 여배우 스테파니 파커가 공터에서 목을 매어 자살했고, 지난달에는 일본 인기 드라마 '노다메 칸다빌레'에 출연했던 배우 이토 타카히로(21)가 자살했습니다. 자살이 시대적 추세가 되어가고 있습니다.
우리나라에서 자살은 OECD 평균의 2배로 OECE 국가중 자살률 1위입니다. 하루 평균 33.3명 자살, 45분마다 한명씩 자살을 하고, 청소년 사망의 두 번째 요인, 20~30대 사망의 첫 번째 요인이 되었습니다. 5명 중 1명은 자살을 생각해본 적이 있고, 10명 중 4명은 누구나 자살할 권리가 있다는 설문조사 결과도 나왔습니다.
2주전에는 이곳 교민 중 한분이 스스로 목숨을 끊었습니다. 살다보면 목숨을 끊어버리고 싶은 고통도 있는 것 같습니다. 십자가를 앞둔 예후님의 고통은 인류 최악의 고통이었습니다. 십자가의 고통은 육체적인 고통이었을 뿐 아니라 정신적 고통이었습니다.
본문 34절에 '내 마음이 심히 고민하여 죽게되었으니...'라고 하셨습니다. 예수님의 정신적 고통의 강도를 느낄 수 있습니다. 그의 정신적 고통이 얼마나 극심했는지 <고민하여 죽게되었다>고 하십니다. 십자가는 버림받는 현장이었습니다. 인류의 죄 때문에 하나님께 버림받는 현장이며, 가장 가까운 제자들, 친구들로부터 버림받는 현장이었습니다. 그는 십자가에서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라고 절규하셨습니다. 가장 가까이 사랑하셨던 한 제자는 그를 배신했고, 한 제자는 그를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그는 배신의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래서 십자가를 앞둔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합니다. <내가 고민하여 죽게되었으니...>
우리들도 이런 고통 속에 처할 때가 있습니다. 어떤 이들은 이런 고통에서 자기를 포기합니다. 스스로 목숨을 끊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체념하고 포기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이런 고통에서 승리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이 땅에 오실 때 완전한 하나님으로 오셨지만, 또한 완전한 인간으로 오셨습니다. 그는 우리와 똑같은 인간으로서 극한의 고통을 당하셨습니다. 우리가 당하는 유혹을 그분도 당하셨습니다. 그럼에도 오늘 본문은 그분의 승리를 말씀합니다. 그분은 어떻게 승리하셨을까요? 그리고 우리들도 극심한 우리의 고통에서 승리하기 위해서 무엇이 필요할까요?
1. 함께 있을 사람들이 필요합니다.
32절.그들이 겟세마네라 하는 곳에 이르매 ....33절. 베드로와 야고보와 요한을 데리고 가실새 ....
● 예수님은 최악의 고통의 순간에 함께 있을 사람이 있었습니다. 십자가를 앞둔 전날밤, 예수님은 고통스러운 마음으로 겟세마네 동산에 가셨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예수님은 간절히 기도하실 것입니다. 히브리서를 쓴 기자는 이날밤 예수님의 기도를 “눈물과 통곡”의 기도였다고 기록했습니다. 겟세마네에서의 드렸던 예수님의 기도는 “땀방울이 핏방울 처럼”되었다고 했습니다. 겟세마네는 예수님이 체포되어야할 장소였습니다. 제자 중 한 사람인 유다가 얼마의 돈을 받고 군인들을 끌고오게 될 것입니다. 배신을 경험하는 장소가 됩니다.
● 그러나 이 고통의 현장에 예수님에게는 함께있을 사람이 있었습니다. 예수님에게도 고통의 순간에 함께 있을 사람이 필요했다면, 우리는 얼마나 더 그런 사람이 필요할까요? 내가 고통당할 때 내 곁에 있어줄 그런 사람이 없다면 우리의 인생의 겨울은 더욱 추울 것입니다. 여러분에게는 그런 친구가 있으십니까?
● 故 함 석헌 선생이 남기신 글 가운데 “그 한 사람을 가졌는가?”라는 명시가 있습니다.
“그 사람을 가졌는가?/만리 길 나서는 길/처자를 내 맡기며 마음놓고 갈만한 사람/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 다 너를 버려 마음이 외로울 때에도/너뿐이야 하고 믿어주는/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탔던 배가 가라앉을 때 구명대를 서로 사양하며/너만은 제발 살아다오 할/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잊지 못할 이 세상을 놓고 떠나려 할때/너 하나 있으니 하며 빙그레 웃고 눈 감을/그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온 세상의 ‘예’보다도/‘아니오’라고 가만히 머리를 흔들며 진실로 충언해 주는/그 한 사람을 그대는 가졌는가?”
· 여러분에게는 이런 친구가 있으십니까?
● 세계 제1차 대전중에 남겨진 두 친구에 대한 아름다운 이야기가 있습니다. 그들은 함께 자라나 함께 징집을 받았고 함께 훈련받아 같은 부대에 배속되어 같은 전쟁터에서 싸웠습니다. 한 친구가 적과 싸우다가 고립되어 자기 참호로 돌아올 수가 없었습니다. 온 사방은 적의 위협적인 포화아래 있어서 그를 구할 방법이 없었습니다. 그를 구하려는 시도 그 자체가 자살행위였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의 친구가 참호에서 빠져 나오려 하자 분대장은 계속 그를 저지했습니다. 그러나 자기 상관이 한 눈을 파는 사이 그는 쏜살같이 친구를 행해 달려가 피를 흘리는 친구를 끌어안고 돌아왔습니다. 그러나 그가 구한 친구는 아군의 진지에 도달했을때 이미 숨을 넘긴 후 였고 자신마저 치명적인 부상을 입고 마지막 숨을 넘기고 있었습니다. 화가난 분대장은 그를 노려보며 “그봐 자넨 쓸데 없는 일을 한거야”하자 그는 이런 대답을 했다고 합니다. “죄송합니다. 분대장님, 그러나 제가 그의 곁으로 달려 갔을때 그는 이렇게 말했다구요, 친구야 난 네가 올 줄 알았어”
· 여러분에게는 이런 친구가 있으십니까?
● 그런데 더 중요한 질문이 있습니다. 나는 고통당하는 이웃에게 이런 친구가 되고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사실 예수님의 친구인 제자들은 예수님의 고통의 현장에서 친구답지 못했습니다. 37절을 봅시다.
37절. 돌아오사 제자들이 자는 것을 보시고 베드로에게 말씀하시되 시몬아 자느냐 네가 한 시간도 깨어 있을 수 없더냐
· 예수님의 고통스러운 그 현장에서, 제자들의 모습은 실망스러웠습니다. 그들은 자고 있었습니다. 예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네가 한 시간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단 한 시간만이라도 깨어있을 수 없더냐? 예수님은 자신의 이런 고통의 시간에 제자들이 같은 마음으로 함께 있어주기를 원하셨습니다. 그러나 제자들은 그러지 못했습니다.
· 마찬가지로 우리들은 우리 주변의 누군가가 고통스러울 때, 우리들은 어떤 모습일까요? 그들과 같은 마음으로 함께 하고 있을까요? 아니면 무관심하게 지나고 있을까요?
● 오래 전 일본 도쿄 올림픽때 스타디움 확정을 위해서 지은지 3년되는 집을 헐게 되었습니다. 인부들이 지붕을 벗기려는데 꼬리 쪽에 못이 박힌 도마뱀 한 마리가 살아서 몸부림치는 것을 발견했습니다. 3년동안 이렇게 살고 있었다는 것이 신기해서 철거 공사를 중단하고 사흘 동안 도마뱀을 지켜보았습니다. 그랬더니 하루에도 몇 번씩 다른 도마뱀 한 마리가 먹이를 물어다 주는 것이었습니다. 긴 고난과 고통의 시간에 돕는 손길이 있었기에 그 도마뱀은 살 수 있었습니다.나도 살기 바쁜데? 하며 먹이를 물어다 준 도마뱀은 못이 박힌 도마뱀을 외면할 수 있었을 것입니다. 우리 주변에는 마치 못에 박힌 도마뱀처럼 움직이지도 못하며 고통 속에 한숨짓는 이웃들이 있습니다. ?나도 힘든데?하며 외면할 수 있지만 내가 내민 손을 통해 그들은 희망을 가질 수 있을 것입니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된 우리, 도마뱀 보다 못한다면 얼마나 부끄러운 일입니까?
● 고통의 현장에는 함께 있을 누군가가 필요합니다. 그러기 위해서는 우리가 먼저 누군가에게 진실한 친구가 되는 것이 필요합니다. 우리 시대의 탁월한 크리스챤 카운슬러요, 의사였던 스위스의 폴 투루니에가 쓴 책에 보면 이런 말이 있습니다. 당신이 배우자와 더불어 마음이 통할 수가 있다면 당신의 아내, 당신의 남편과 더불어 마음이 통할 수 있는 애정의 관계를 가질 수가 있다면 그리고 당신의 동성 가운데서 마음이 통할 수 있는 몇명의 친구,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나를 비판하지 않고 내 얘기를 들어 줄 수 있는 몇 명의 친구만 있을 수 있다면 당신의 인생의 장에서 아무리 폭풍우가 요란해도 당신은 그 폭풍우를 뚫고 나갈 수가 있을 것입니다. 이것은 얼마나 탁월한 진단입니까? 인생의 장에서 아무리 우리가 폭풍우와 먹구름을 경험한다 할 지라도 내가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와 더불어 마음 통하는 애정의 관계를 가질 수 있다면 그리고 내 동성 친구들 가운데 몇 사람 내가 무슨 얘기를 해도 내 마음 속의 얘기를 받아주고 들어주고 함께 할 수 있는 친구 몇 사람만 있다면 나는 인생의 어떤 폭풍우도 뚫고 나갈 수가 있다. 저는 이것이 진실이라고 생각합니다.
● 우리 교회에서는 <목장교회>를 강조합니다. 목장교회라는 것은 다른 말로 가족입니다. 교회는 가족입니다. 가족은 고통의 순간에도 함께 있는 사람들입니다. 우리 교회가 서로에게 가족이 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이민생활, 유학생활하면서 우리들은 나름대로 고통의 시간대를 지날 때가 있습니다. 그 순간에 내 곁에 있어줄 사람이 있다면, 우리는 승리할 수 있습니다.
2. 기도를 배우셔야 합니다.
● 인생의 고통의 순간에 함께 있어줄 친구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인가요. 내 마음의 고통을 함께 나눌 수 있고, 함께 울고 함께 웃을 수 있는 친구가 있는 사람은 얼마나 행복한 사람일까요? 그런데 여러분, 인생의 어떤 짐들은 내 가까운 사람들하고도 나눌 수 없는 것들이 있습니다. 아무리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위로해주려해도 위로가 되지 못하고, 아무리 내 옆에 있는 사람이 나를 이해할려고 해도 이해할 수 없는 인생의 어떤 짐들이 있습니다.
● 그럴 때는 어떻게 하면 좋을까요? 예, 바로 하나님께 나아가 우리 짐을 맡겨야 합니다. 예수님도 십자가를 앞둔 그날 밤에, 인생의 가장 고통스러운 그 밤에 그가 찾은 장소는 바로 기도의 장소였습니다. 그날 밤 예수께서 제자들과 함께 겟세마네 동산에 오른 이유는 기도하기 위해서입니다. 오늘 본문 35절을 쉬운성경에서는 이렇게 번역하고 있습니다.
35절. 예수님께서 조금 더 가셔서 땅에 엎드리셨습니다. 그리고 할 수만 있다면, 그 때가 지나가 버리기를 기도하셨습니다.
· 그 밤에 예수님은 기도하셨습니다. 땅에 엎드리어 기도하셨습니다. 간절히 기도하셨습니다. 고통스러운 인생의 현장에서 이렇게 기도할 수 있는 사람들은 일어날 수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기도를 배우셔야 합니다. 우리의 일상의 매일의 양식을 위해서도 기도해야하지만, 우리가 감당해야할 인생의 무거운 십자가를 감당하기 위해서도 우리는 기도해야합니다. 본문과 같은 사건을 기록하고 있는 누가복음 22장에서는 이렇게 말합니다.
눅22:39예수께서 나가사 습관을 따라 감람 산에 가시매 제자들도 따라갔더니
· 예수께서 그날밤 거기에 기도하시러 간 것은 “습관”이었다. 무슨 말입니까? 예수님께서는 평소에도 자주 기도하시러 거기에 가셨다는 것입니다. 기도가 그분의 습관이었습니다. 평안의 때에 기도가 습관이 된 사람들은 위기의 때에도 기도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평안의 때에 기도를 배우지 못한 사람들은 위기의 때에는 더더욱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정작 기도가 정말 필요하고 간절히 기도해야할 때에 기도하지 못한다는 것입니다. 인생 가운데 기도가 가장 필요한 순간이 바로 극심한 고통의 때입니다. 그러나 이 때야말로 가장 기도하기 어려운 때이기도 합니다. 모든 것을 자포자기하는 마음 때문에 기도하기가 어렵습니다.
● 저는 가끔 의아할 때가 있습니다. 사람들이 어려움당하고 고통을 당할 때, 저 정도면 새벽에 나와서 기도해야할 것 같은데 전혀 나오지 않는 거예요. 저 정도의 고통이면 새벽에 나와서 정말 간절히 기도해야할 것 같은데 전혀 그렇지 못한 거예요. 그런데 평소에 기도의 습관이 되지 못한 사람들은 위기의 때에, 정말 기도가 필요한 때에 기도하지 못한다는 것을 발견하게 됩니다.
● 아프리카에는 <뱀잡이수리>(Secretary bird)라는 아주 특이한 새가 있습니다. 뱀잡이수리는 아프리카의 희귀 조류중 하나로서, 독수리와 비슷하다고 합니다. 이 새는 주로 공중을 높이 날아다니다가 두더지나 뱀 같은 것을 발견하면 쏜살같이 내려가 낚아챈다고 합니다. 평상시에는 뱀잡이수리가 민첩하게 잘 날아다닙니다. 그런데 땅에 내려와 먹이를 먹다가 맹수의 습격을 받게 되면, 이상하게 날지 않고 혼신의 힘을 다해 뛴다고 합니다. 너무도 당황한 나머지, 자기가 날 수 있다는 사실을 잊어버리는 것입니다. 결국 얼마 못 가서 맹수에게 잡아먹힌다고 합니다. 뱀잡이수리를 보면서 우리의 모습을 비추어 볼 수 있습니다. 기도가 정작 필요한 때에 기도하지 못하고, 기도를 잊어버려 어쩔 줄 모르고 당황하며 방황하는 우리들의 모습을 발견하게 됩니다. 위기의 때에는 기도가 더 어렵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기도의 훈련을 하셔야 합니다. 하고 싶을 때에도 기도하셔야 하고, 하고싶지 않을 때에도 새벽을 깨워 기도하셔야 합니다. 기도는 훈련입니다. 기도는 습관입니다. 예수님은 그날 밤 습관을 좆아 기도하셨습니다. 여러분에게도 기도가 습관이십니까?
● 그런데 여러분, 기도를 너무 의무적으로만 대하지 마십시오. 기도를 훈련해야하지만, 의무감으로 하지는 마십시오. 기도는 의무이기 보다는 하나님께 마음을 쏟아내는 시간입니다. 우리는 기도를 통해서 우리의 고통을 쏟아낼 수 있습니다. 우리의 눈물을 쏟을 수 있습니다. 우리의 아픔을 내려놓을 수 있습니다. 어떤 사람들에게는 우리의 얘기를 내려놓는 것이 긴장이 되지만 하나님께는 아무런 긴장을 할 필요가 없습니다. 우리가 무슨 말을 하든 소문날 염려하지 하지 않아도 좋습니다. 우리가 무슨 기도를 하든 비판받을 염려하지 않아도 됩니다. 우리가 어떤 얘기를 하더라도 지루해하지 않습니다. 그래서 제임스 휴스턴이라는 사람은 기도에 대한 책을 쓰면서 책 제목을 이렇게 말했습니다. <기도-하나님과의 우정>. 그렇습니다. 기도는 하나님과의 우정의 시간입니다. 친구가 친구와 얘기함같이 기도는 우리의 모든 것을 친구되신 하나님께 쏟아내는 것입니다.
● 오늘 주님께서 하나님를 부르는 장면이 얼마나 다정합니까?
36절.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 예수님은 하나님을 아빠라고 부르셨습니다. 마치 어린아이가 아버지를 친근하게 부르듯이 그렇게 불렀습니다. 기도가 이런 것입니다. 기도를 거리감있게 생각하지 마시고, 우리가 무슨 말을 하더라도 다 들어주시는 아빠에게 말하는 것이다 이렇게 생각하십시오.
· 여러분,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는 분이 우리의 아빠가 되신다는 것을 기억하십시다.
● 저는 〈펭귄: 위대한 모험)(The March of the Penguins)이라는 기록영화를 매우 감명 깊게 보았습니다. 그 영화는 남극에 사는 황제펭귄이 자신을 희생하며 새끼를 돌보는 모습을 보여 줍니다. 아버지 펭귄은 시속 160km에 달하는 눈보라와 영하 80.c의 날씨 속에서도 새끼틀을 보호하느라 몇 달간 거의 먹지도 못하고 발위에 알을 올려놓고 움직이지 않습니다. 저는 이 영화를 보면서 우리를 품어주시는 하나님의 품을 느낄 수 있었습니다. 새끼들은 고통이 자기만의 고통이라 여길지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는 이 황제펭귄처럼 우리를 품고계시고 안고계시는 분이라는 사실을 잘 알지 못합니다. 우리의 기도를 받으시는 분은 바로 이런 아버지가 되시는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고통의 때를 위해서, 기도를 배우십시오. 우리의 아빠 하나님께 기도하는 법을 배우십시오. 마음을 쏟아놓고 고민을 자유롭게 털어놓고 기도하십시오.
3. 하나님의 섭리를 받아들이십시오.
● 때때로 인생이 고통스러운 것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 때문입니다. 예수님께도 십자가는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었습니다.
36절. 이르시되 아빠 아버지여 아버지께는 모든 것이 가능하오니 이 잔을 내게서 옮기시옵소서 그러나 나의 원대로 마시옵고 아버지의 원대로 하옵소서 하시고
· 이것이 처음 기도였습니다. 기도하신 후에 잠깐 제자들 있는 곳으로 오셨다가 다시 기도하십니다. 39절입니다.
39절. 다시 나아가 동일한 말씀으로 기도하시고
· 그리고 다시 제자들있는 곳으로 오셨다가 기도하시고, 세 번째로 다시 제자들에게로 오십니다. 그런데 세 번째 오셨을 때에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41절 세 번째 오사 그들에게 이르시되 이제는 자고 쉬라 그만 되었다 때가 왔도다 보라 인자가 죄인의 손에 팔리느니라
● 예수님은 기도하시고 기도하시면서 자기를 향한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입니다. 기도후에 고통이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십자가가 사라진 것이 아니었습니다. 오히려 그 다음날 예수님은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그렇다면 예수님은 그날 밤에 기도를 통해서 무슨 응답을 받은 것일까요? 바로 십자가를 받아들일 수 있는 용기를 얻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십자가를 받아들였습니다. 고통을 받아들이셨습니다. 하나님의 뜻을 받아들였습니다.
● 우리가 배우야할 것이 이것입니다. 때때로 우리 인생 가운데는 내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 있습니다. 고통스러운 현실이 있습니다. 도무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현실이 있습니다. 그것을 받아들이셔야 합니다. 신앙은 우리의 현실을 받아들이는 용기입니다. 이것을 <순명>이라 부릅니다. 때때로 우리는 하나님이 이해되지않습니다. 왜 하나님께서 이런 고통스러운 현실을 내게 허락하시는지 이해되지 않습니다. 그런데 이해되지않아도 그것을 받아들이는 것이 신앙입니다.
● 영국의 윌리엄 카우퍼(William Cowper)라는 청년이 서른 두 살이 되었을 때 인생이 너무나 고통스럽다고 느낀 나머지 이런 인생을 계속 살기보다 차라리 인생을 포기하겠다는 결론을 내렸습니다. 그래서 그는 강에 뛰어내릴 작정으로 마부에게 테임즈 강을 향해 가자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이 청년의 표정을 수상하게 여긴 마부는 청년을 내려놓고는 그를 지켜보고 있다가 그가 강에 투신하려는 순간에 붙잡았습니다. 그리고는 이 청년을 향해 이렇게 격려하고 돌아갑니다. "앞길이 창창한 젊은이가 이런 일을 하면 어떻게 합니까? 그 용기를 가지고 굳세게 사십시오." 그 마부 때문에 그의 첫 번째 계획은 실패합니다.
● 그는 집에 돌아오자마자 다시 음독자살을 시도했습니다. 그러나 그 이웃집에 사는 사람이 우연히 그의 집을 방문했다가 그가 아직 숨쉬고 있음을 확인하고 해독제를 먹여서 살려 냈습니다. 두 번째 자살에도 실패한 그는 '내가 이래서는 죽을 수 없겠구나'라고 생각하여 이번에는 면도날을 가지고 손목의 동맥을 끊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그 순간 놀랍게도 면도날이 부러지는 바람에 세 번째 시도도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래도 그는 포기하지 않고 네 번째는 꼭 성공하리라 결심하며 목을 매달았습니다. 그러나 목을 매단 순간 또 이웃집 사람이 와서 매달려 있는 그를 발견하고는 곧 끈을 풀어 병원으로 데려가 살렸습니다. 그는 병원에서 어렴풋하게 '아, 나는 죽을 수도 없는 운명이구나!'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 그러나 그의 정신적인 상태는 이루 말할 수 없이 피폐해져 정신병 징후에 시달렸고 계속해서 정신적인 고통을 당했습니다. 그렇지만 그를 사랑했던 이웃들의 배려와 손길을 통하여 교회로 초청 받았고 복음의 말씀을 통해서 그는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주님을 의지하기 시작했습니다.
● 이때 그에게 가장 도움을 주었던 분은 "나 같은 죄인 살리신"(Amazing Grace, 찬송가405장)을 작사했던 존 뉴톤 목사님이었습니다. 존 뉴톤 목사님은 그의 친구가 되어 늘 신앙적인 대화를 나누며 상담해주고 격려하면서 그의 믿음을 북돋아 주었습니다. 그런데 그에게도 목사님처럼 시적인 재능이 있었습니다. 자기를 양육해준 목사님을 따라 그도 자기를 구원해 주신 예수 그리스도와 하나님을 위해서 찬송시를 쓰기 시작했습니다. 그래서 쓰여진 찬송시 중에는 찬송가가 되어 전세계 사람들에게 불리고 있는 곡이 무려 67곡이나 됩니다. 그 중 우리 찬송가에 세 곡이 있는데 그 중에 하나는 우리가 잘 알고 있는 "샘물과 같은 보혈은"(190장)입니다.
● 그가 쓴 찬송시 중 그가 죽지도 못하고 다시 살아난 자리에서 복음을 듣고 예수를 영접했을 때 쓴 찬송시가 있는데 "주 하나님 크신 능력"입니다.
· "하나님은 신기한 방법으로 섭리하시는 도다.
· 그분은 경이롭게 일하시니 바다에 그분의 발자취를 남기며
· 폭풍우 위로 걸어가시는 도다.
· 저 깊고 깊은 생각 위에 내가 알 수 없는 신묘한 기술로써
· 자신의 밝은 계획을 높이 세우고 그 분의 주권 적인 뜻을 이루시는 도다.
· 내 부족한 판단으로 주를 판단치 말지니 은혜로우신 그 주님을 의뢰할지라.
· 그분의 오묘한 섭리 뒤에 자신의 미소짓는 얼굴을 숨기시는 도다."
● 예수님의 십자가는 사람들에게 이해되지 않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나 이 십자가는 오늘날 만인이 구원받는 표가 되었습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십자가, 우리가 받아들이고 싶지 않은 고통스러운 십자가... 때때로 이해되지 않지만, 왜 하나님께서 내게 이것을 허락하셨는지 이해되지 않지만 그것을 받아들이십시오.
· 찬송가 가사처럼<내 부족한 판단으로 주를 판단치 말지니...은혜로운신 그 주님을 의뢰할지라>
· 그리고 <그분의 오묘한 섭리 뒤에 자신의 미소짓는 얼굴을 숨기시는도다> 주님께서는 우리로 미소짓게 하는 날을 준비하십니다. 지금은 이해되지 않지만 내 고통의 현실을 받아들이십시오. 그리고 주님께 도움을 요청하십시오. 감당할 수 있는 힘을 달라고 기도하십시오. 하나님의 인도하심 앞에 자기를 자기를 맡기십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