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 11. 29.

눅17:11-19 그래도 감사해야할 이유


■ 서론

• 한 크리스챤 작가요 심리학자가 다음과 같은 권두언으로 자신의 책을 소개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나의 사무실 스태프들의 월급을 지불하지 못할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내는 최근 오른쪽 팔꿈치에 혹이 만져져서 MRI사진을 찍었는데 그 결과가 어떻게 나올 것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의 아내 캐롤은 또한 홀몬 불균형으로 고생하고 있는데 아직 효율적인 치료책을 못 찾고 있어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집안 정리나 청소할 시간이 없어 언제 시간을 내어 산만한 집안 살림을 정리할 것인가를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최근 미국 대통령의 국정 운영이 너무 맘에 들지 않아 걱정하고 있었습니다.

나는 물론 이런 모든 문제에 대하여 ‘너희는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라’는 성경 말씀을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러나 저는 그 말씀을 생각할 때 마다 염려를 떨쳐 버리지 못하는 제 자신이 더욱 염려가 됩니다. 저는 염려하지 않을 수 없는 제 자신을 염려하고 있는 것입니다. 나는 이런 증세가 어떻게 내 관절을 아프게 하는지, 어떻게 내 침을 마르게 하는지, 어떻게 내 손바닥에 땀이 나게 하는지, 어떻게 호흡곤란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소화불량과 위경련을 일으키는지, 어떻게 우울증을 유발시키는지 잘 알고 있습니다.

그런데 나와 나의 아내는 우리들의 문제에 대한 너무나 완벽하고 강력한 치료책을 찾아냈습니다. 이 치료제의 효율성은 거의 기적적인 것입니다. 저와 저의 아내를 포함한 수많은 사람들이 이 치료제의 효율성을 임상적으로 경험했습니다. 이 치료제는 식전이나 식후에 복용하시면 됩니다. 호흡곤란을 느낄 때 가슴에 통증이 느껴질 때 수시로 복용하실 수도 있습니다. 물과 함께 드실 수도 있고 물 없이 드실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특별한 처방 천을 필요로 하지 않습니다. 이 치료제는 절대로 부작용이 없고 안전합니다. 더욱이 이 치료제는 무료입니다. 이 치료책을 일컬어 저는 ‘댕큐 테라피’(thank-you therapy)라고 부릅니다.

­ 이 이야기는 단 베이커(Don Baker)라는 분이 자신의 책 ‘탱큐 테라피’를 소개하며 한 말입니다.

• 우리가 감사할 때 우리 삶을 회복하고 치유하는 힘이 있다는 얘기입니다. 그런데 사실 감사가 그렇게 쉽습니까? 쉽지 않습니다. 특히 요즘같이 걱정스럽고 불안한 시대 속에서 감사하며 산다는 것이 쉽지 않습니다.

•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들은 여전히 감사할 이유가 있다고 믿습니다.

● 우리가 감사해야할 이유

(1) 주님께서 베풀어주신 은혜 때문에

• 오늘 본문을 보면 열명의 문둥병환자들, 다른 말로 한센씨 병, 혹은 나병이라 부르죠. 나병환자 열명이 예수님을 찾아왔습니다.

• 나병환자들은 오늘날의 AIDS 환자와 같은 사람들입니다. 치유될 가능성이 없었습니다. 더군다나 이 사람들은 다른 사람들과 함께 어울려 살 수 없습니다. 동네에서 멀리 떨어져 살아야했고, 혹시 동네에 이런 나병환자들이 들어오면 사람들은 “부정하다, 부정하다, 부정하다” 소리치면서 돌을 던져 나병환자들을 쫒아냈습니다. 이것은 나병이 사람들에게 전염되기 때문에 전염을 막기위한 방편이었지만, 나병환자들 입장에서는 가족들과도 격리되어야 하는 아픔 속에 있었던 것입니다.

• 그런데 이 열 사람의 나병환자들/ 문둥병 환자들이 고침받았습니다. 나병환자의 전력을 가진 사람이 동네에 살기위해서는 동네 제사장들에게 더 이상 나병이 없다는 판정을 받아야 합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제사장에게 보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재미있는 것은 말씀하셨을 예수님이 이 사람들을 고쳐놓고 제사장에게 가라고 하시지 않고, 그대로 제사장에게 가라고 말씀하신 것입니다. 그래서 가다가 보니까 이 사람들의 나병이 다 치료된 것입니다.

14절. 보시고 가라사대 가서 제사장들에게 너희 몸을 보이라 하셨더니 저희가 가다가 깨끗함을 받은지라

• 한번 상상해 보십시오. 얼만 감격적인 순간이었겠습니까? 열사람의 나병환자들이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제사장에게로 가고 있지 않았겠습니까? 아직 다 나은 것도 아닌데 이렇게 무작정 가야하나 하는 생각도 들었을 것입니다. 그런데 가다가 보니까 옆에 있는 사람의 얼굴이 멀쩡해 진 것입니다. 피부병 같은 것도 없어진 것입니다. 반점도 얼룩도 다 사라졌습니다. 흉측한 모습들이 사라졌습니다. 가다가 얼마나 이들은 서로를 얼싸안고 얼마나 좋아했겠습니까? 얼마나 마음이 흥분했겠습니까?

• 이것은 예수님의 기적때문이었습니다. 예수님이 은혜입니다. 평생을 나병환자로서 사랑하는 사람들과 격리되어 살아야했던 이들이 이제는 가족에게로 돌아갈 수 있었습니다. 이제는 건강한 몸으로 무언가를 해볼 수도 있습니다. 꿈도 펼칠 수도 있습니다. 이것은 전적인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 우리가 감사해야할 이유, 바로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여러분, 영어의 감사란 말 ‘THANK'는 생각한다는 'THINK'와 같은 어근입니다. 생각해보면 주님의 은혜 아닌 것이 없습니다. 생각해보면 주님께 감사할 일이 참 많습니다. 우리가 불평하고 원망스러운 일들 속에도 생각해보면 주님의 은혜가 참 많아요. 누군가의 글에 이런 글이 적혀있습니다.

“당신이 많은 세금을 내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안정된 직장과 사업장이 있다는 말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몸무게가 늘어 옷이 맞지 않는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먹을 것이 넉넉한 인생을 살아오신 것입니다. 세탁할 옷이 집안 한 구석에 쌓여 있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는 적어도 갈아입을 옷의 여유가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당신의 집에 대 청소가 필요하고 문고리를 갈아야 하고 창문을 갈아야 한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몸을 위탁할 집이 있다는 뜻이기 때문입니다. 멀리라도 주차할 공간을 찾았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잠시라도 걸어갈 운동의 기회가 주어졌기 때문입니다. 당신에게 불평할 대통령이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언론의 자유가 보장된 나라에 살고 있는 것입니다. 교회 뒷 자리에 앉아 있는 교우의 찬송 음정이 억망으로 들려오고 있다면 감사하십시오. 당신의 청각은 정상이기 때문입니다. 아침에 울리는 자명종 소리가 고통스럽게 들리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에게 일어나 일해야 할 하루가 기다리고 있기 때문입니다. 하루해가 저물어 온몸이 나른하고 피곤하거든 감사하십시오. 당신은 오늘 하루를 생산적으로 사신 것입니다.”

• 우리 삶을 가만히 생각해보면 주님의 은혜가 많습니다. 나에게 불평스러운 것도 주님의 은혜라 생각하면 감사할 수 있습니다. 바울은 육체의 질병이 있었던 것 같았습니다. 바울은 이것을 ‘육체의 가시’라고 얘기했습니다. 바울은 이 가시가 없어지기를 기도했습니다. 그런데 주님의 대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그것은 ‘내 은혜가 네게 족하다’ 이 말이 무엇입니까? 내 은혜가 네게 충분히 있다는 것입니다. 육체의 가시가 있지만, 생각해보면 이것 말고도 주님의 은혜인 것이 너무나 많습니다. 자기 삶 속에서 주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불편한 것에서도 주님의 은혜를 볼 수 있는 사람은 감사할 수 있습니다.

• 무엇보다 큰 주님의 은혜는 나병보다도, AIDS보다도 더 무서운 영혼의 질병, 죄의 질병에서 우리를 구원하셨다는 것입니다. 스스로 치유할 수 없고, 해결할 수 없고, 죄로 말미암아 영원한 심판을 받아야 하고, 하나님의 저주아래 있어야 하는 저희들, 지옥에 떨어질 수 밖에 없고, 영원한 하나님의 분노의 대상일 수 밖에 없는 우리들, 우리들의 죄를 용서해주셨다는 것입니다. 값없이 용서해주시고, 은혜로 용서해주셨습니다. 예수님의 십자가에서 흘리신 그 은혜 때문에 우리는 이제 하나님의 자녀가 되었습니다. 천국 백성이 되었습니다. 이것이 얼마나 큰 은혜입니까? 바울은 로마서 이를 가리켜 “은혜 위의 은혜”라고 말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이 큰 은혜를 받은 자들입니다. 우리는 이 은혜 때문에 감사할 수 있습니다.

(2) 주님께서 감사를 기대하시기 때문에

• 나병 환자 열명 중에 한 사람이 주님께 돌아와 감사했습니다. 그러자 주님은 “그 아홉은 어디있느냐?”고 반문하십니다. 주님께서는 감사를 기대하고 계셨습니다. 물론 주님께서는 나병환자들의 병을 고쳐주면서 고침받으면 돌아와서 감사하라고 말씀하시지 않았습니다.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 자발적인 감사를 기대하고 있습니다.

• 더군다나 고침받고 감사하기 위해서 돌아온 사람은 16절을 보면 ‘사마리아 사람’이었고, 18절에서는 그를 이방인으로 부르셨습니다. 이방인도 와서 감사하고 있는데 정작 하나님의 백성들이 감사를 모른다는 것입니다.

• 한국에 입시철이 되면 자녀들의 대학진학을 앞둔 부모님들이 새벽에 정말 열심히 나와서 기도합니다. 그런데 감사기도드리기 위해서 새벽에 나오는 사람들은 별로 없는 것 같습니다. 입시철이 지나면 그렇게 열심히 기도하러 나오는 사람들이 보이지 않아요. 예수님께서는 물으실 것입니다. “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그 고침받은 아홉은 어디있느냐? 그 기도응답받은 사람들은 지금 어디있느냐?

• '그 아홉의 변명' 이라고 하는 작자 미상의 글이 있습니다.

­ 한 사람은 '의사와 제사장에게 가서 정밀검사를 해야겠다' 해서 갔다는 겁니다. '이게 나은 것 같은데 정말 나았는지.' 아주 의심이 많은 사람이에요.'가서 정밀검사를 해야지' 그래서 가버렸어요.

­ 두 번째 사람은 혹, '재발 가능성이 있는지도 몰라. 그런고로 며칠 두고 봐야겠다.' 이거, 신중론이요. 이거 나았다고 하는데 꿈같은 얘기라서 정말 나았는지 좀 기다려 봐야겠다는 거예요.

­ 세 번째 사람은 '내 병은 본래 문둥병이 아닌 좀 특이한 피부병 정도였던가 보다.' 이건 회의론자입니다.

­ 네 번째 사람은 '내 병은 나을 때가 돼서 나았을 거야.'이건 자연현상으로 보려고 합니다. 가만히 보면 그런 일들이 많잖아요. 어떤 병 걸렸다가 나았을 때, "어떻게 나았어?""그저 뭐, 약도 좀 쓰고 병원에도 가긴 했지만 나을 때가 되어서 나았나봐." 이렇게 생각하는 사람들이 많아요.

­ 다섯 번째 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가졌던 밭과 재산이 지금 어떻게 되었는지 이게 궁금해요, 이제 먹고 살아야겠으니까. 그래서 그걸 빨리 알아보기 위해서 가버렸어요.

­ 여섯 번째 사람은 병 걸리기 전에 같이 있었던 가정과 식구들, 특별히 아내가 수절하고 있는지 그게 궁금해요. 그래서 가버렸답니다.

­ 일곱 번째 사람은'그리스도께서 특별히 해준 것이 없잖아.'안수를 해준 것도 아니고, 어루만져준 것도 아니고, 안찰을 한 것도 아니고, 약을 준 것도 아니고 말이에요. '아, 그저 "가서 보여라" 한 말씀 밖에 안했는데 아, 뭐 예수님이 별로 해준 것도 없는데'그런 어리석은 생각을 하는 사람도 있었을 거란 말입니다.

­ 여덟 번째 사람은 '다른 유명한 랍비들도 이런 것은 아마 가능할는지 몰라.'예수님의 능력을 상대화 해버렸단 말입니다.

­ 아홉 번째 사람은'이 모습대로 갈 수는 없잖아. 가서 목욕을 하고 새 옷을 입고 예물을 가지고 그리고 예수님께 가야지.'그래서 가버렸는지도 모르겠습니다........

­ 우리 주님께서 여러분에게 이렇게 묻고 있습니다.

" 예수께서 대답하여 가라사대 열 사람이 다 깨끗함을 받지 아니하였느냐 ...그 아홉은 어디 있느냐" (눅17:16-17)

• 도스토예프스키는 1864년 「지하에서 온 편지」 (Notes from Underground)에서 인간에 관해 이렇게 썼다.

“인간은 바보가 아닌 한 어처구니없을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른다! 놀라울 정도로 감사할 줄 모르는 인간. 사실 나는 인간에 대한 최고의 정의가 ‘감사할 줄 모르는 두 발 달린 동물’ 이라고 생각한다."

• 하나님이 찾으시는 사람은 감사할 줄 아는 사람입니다. 하나님께서는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 큰 감사의 할 것들을 주십니다. 이 나병환자가 돌아와서 주님께 감사하자, 주님께서는 19절에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9절. 그에게 이르시되 일어나 가라 네 믿음이 너를 구원하였느니라

­ 이 사람의 육체의 질병만 구원하신 것이 아니라, 이 사람의 영혼의 질병인 죄에서 구원하시는 구원의 선물도 허락하십니다.

• 스펄젼 목사님은 :

"촛불을 보고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전등불을 주시고 전등불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하나님이 달빛을 주시고, 달빛을 보고 감사하는 사람에게는 햇빛을 주고 햇빛 보고 감사하는 람에게는하나님이 촛불도 전등불도 달빛도 필요없는 영원한 천국을 주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 예수님은 감사를 기대하시고 감사하는 사람들을 기뻐하시기 때문에 감사하는 사람들에게는 더욱 감사할 일들을 많이 주십니다. 이것이 신비한 감사의 법칙입니다. 감사하면 감사할 수록 감사할 일이 많아지고, 불평하고 불평하면 불평할 일이 많아집니다. 우리가 작은 것에 감사할 때 주님께서는 더 큰 감사의 제목을 주십니다.

• 이재철 목사님의 설교집을 보니까 이런 내용이 있었습니다.

지금으로부터 몇 년전 당시 유럽 성악계에 태양처럼 떠오른 한국 여성이 한명있었다고 합니다. 푸치니의 ‘나비부인’ 주인공으로 오스트리아, 독일 등에서 공연을 하면 ‘비로서 나비부인을 찾았다’고 호평할 정도였다고 합니다.

그런데 이 여인이 프리마돈나가 된 배경이 재미있습니다. 지금 이태리에는 성악을 공부하고 할 일없이 놀고 있는 사람이 3,000명 정도라고 합니다. 이 여인도 이태리에서 수년동안 성악공부를 마쳤지만, 마땅한 배역이 주어지지 않았습니다. 이렇게 빛을 보지 못한 것이 눈때문이라 생각하고 한국에 있는 엄마에게 연락을 해서 한국의 유명한 성형의고 의사에게 쌍꺼풀 수술을 하기로 예약하고 들어갈 날을 기다리고 있었는데, 마침 그 주일날 로마 한인교회의 목사님 설교 내용이 유별났습니다. “왜 주어진 것에 감사하지 않느냐, 왜 여인들이 쌍꺼풀 수술을 하냐, 쌍꺼풀 수술해서 나중에 죽어서 하늘나라 갔는데 하나님이 너 누구냐, 나는 너한테 쌍꺼풀 안 줬는데 너는 누구냐, 이러면 어떻게 하냐”는 거예요. 어떻게 생각하면 유치한 설교내용이라 생각될 수 있는데, 그 설교를 듣고 자기 문제로 받아들이기로 적용을 했습니다. 그래서 한국에 있는 어머니에게 연락을 해서 쌍꺼풀 수술을 안한다고 연락을 하고 가지 않았습니다. 그리고 쌍꺼풀 수술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수술하기로 되어있는 다음날에 있는 콩쿠르에 참가할 수 있게되었고 거기서 대상을 받았습니다.

그런데 그 현장에 독일의 유명한 극장의 극장장이 앉아 있었습니다. 그 자리에서 나비부인에 발탁된 젓입니다. 조연도 많이 안 해 본 사람이 주연을 하려니까 얼마나 힘들겠습니까? 그래서 극장장에게 어느 날 물었습니다. “나처럼 서툰 사람을 왜 주연으로 뽑았느냐”고 말입니다. 극장장의 대답이 <당신의 눈 때문이라>는 것입니다.

본래 나비부인은 일본 여인이지만, 일본 사람의 가창력은 한국 사람에 비해서 떨어진답니다. 그래서 유럽에서 인정을 못 받는대요. 그뿐만 아니라 일본 여자는 100퍼센트 쌍꺼풀 수술을 했다는 겁니다. 그래서 일본 여자를 무대 위에 올려놓으면 유럽 관객이 보기에 일본 여자로 보이지가 않는다는 거예요. 그런데 너 같은 가창력을 가진 사람 가운데 쌍꺼풀 없는 동양 여자를 처음 봤다는 것입니다. 그 뒤에 그분은 무대 위에서 나비부인을 노래하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노래하는 것입니다.

(3) 주님께 영광돌리는 길이기 때문에

•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 제 1장 1조는 이렇게 시작합니다. “사람이 사는 목적은 무엇이뇨, 이는 하나님께 영광돌리며, 그 안에서 영원히 즐거워하는 그것입니다.” 릭 워렌 목사가 쓴 <목적이 이끄는 삶> 제 1장 첫 번째 소제목은 이렇게 시작합니다. “It's not about you" (이것은 당신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다). 우리 인생은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서 창조된 존재입니다. 구약의 이사야서는 이런 하나님이 음성을 듣습니다.

사43:7 “무릇 내 이름으로 일컫는 자 곧 내가 내 영광을 위하여 창조한자를 오게 하라 그들을 내가 지었고 만들었느니라”

­ 우리가 창조된 목적, 우리가 여기 존재하는 목적은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우리가 구원받은 목적도 하나님의 영광입니다.

• 그런데 질문은 어떻게 우리가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삶을 살 수 있는가 하는 것입니다. 우리는 무슨 특별한 일을 행해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라고 생각합니다. 커다란 예배당을 짓고, 오케스트라와 웅장한 성가대가 있는 예배들 드려야 하나님께 큰 영광을 돌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대형 체육관을 빌려 커다란 집회를 가져야 하나님께 영광돌린다고 생각합니다. 기독교인이 이 사회에서 대통령이나 장관이나 유명인사가 되어야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것이라 생각합니다.

• 그러나 본문 말씀 18절을 읽어보십시오. 예수님께서는 감사하기 위해 돌아온 이 사람을 가리켜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러 돌아온 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 삶의 지극히 작은 일에서부터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작은 일에서부터 감사하는 습관을 들이십시오. 작은 일에 감사하지 못하는 사람은 큰 일에도 감사하지 못합니다. 기도로 감사하시고, 물질로 감사하시고, 찬양으로 감사하시고, 시로 감사하시고 구체적으로 감사하십시오. 작은 일에서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사람이 큰 일에도 감사하며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 이렇게 감사가 습관이 된 한 분을 꼽으라면 사랑의 원자탄 손양원 목사님을 꼽겠습니다.

1948년 10월 19일, 제주폭동사태를 진압하기 위해서 여수에 직결해 있던 14연대 소속 군인들중 남로당계열의 군인을 중심으로 해서 일어난 사건이 소위 여수순천반란사건입니다. 이 와중에 손양원 목사님의 두 아들, 순천사범학교 졸업을 앞둔 동인이와 동신이가 공산당 청년들에 의해서 체포됩니다. 그러면서 마지막까지 복음을 전하다가 죽어버리는 순교의 사건이 일어납니다.

손목사님은 교회에서 기도를 하고 있던 중 두 아들의 순교소식을 접하자마자 즉시로 이런 기도를 했습니다. “하나님, 뜻이 있어서 불러 가신 것 감사합니다.” 그리고 이내 그분의 기도는 이런 기도로 집중되었습니다. “하나님, 내 두 아들을 죽인 사람, 생명을 보존해 주십시오. 제가 전도하겠습니다. 그가 그대로 지옥에 가서는 안됩니다. 하나님, 저에게 그를 사랑할 수 있는 마음을 주십시오.” 그리고 미군사령관을 찾아가서 진정해서 마침내 그를 양아들로 삼고 자기 두 아들이 못 다한 일을 하라고 손안신이라는 이름을 그에게 지어줍니다.

그리고 장례식장에 나타난 손목사님, 9가지의 유명한 감사를 드립니다.

첫째, 나 같은 죄인의 혈통에서 순교의 자식들을 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둘째, 허다한 많은 성도들 중에서 이런 보배를 나에게 주셨으니 감사합니다. 셋째, 3남 3녀 중에 가장 귀중한 장남과 차남을 바치게 하셨으니 감사합니다. 넷째, 한 아들의 순교도 귀하거늘 하물며 두 아들이 순교하게 하시니 감사합니다. 다섯째, 예수 믿고 와석종신해도 복이라 하였는데 전도하다 총살 순교했으니 감사합니다. 여섯째, 미국 유학가려고 준비하던 아들들이 미국보다 더 좋은 천국 갔으니 내 마음 안심되어 감사합니다. 일곱째, 내 아들을 죽인 원수를 회개시켜 아들을 삼고자하는 사랑의 마음을 주신 것을 감사합니다. 여덟째, 내 아들의 순교의 열매로서 무수한 천국의 열매가 생길 것을 인해서 감사 드립니다. 아홉째, 역경 속에서도 하나님의 사랑을 깨닫게 하시고 이길 수 있는 믿음을 주신 하나님께 감사합니다.

전남 여수에 가시면 손양원 목사 기념관이 있는데 거기에는 여러 가지 기념사진들과 유품들이있는데, 거기에는 장례식을 치른 바로 그 다음 주일날 손목사님이 드린 감사헌금의 봉투가 그대로 보관되어 있었습니다. [두 아들의 순교를 감사하며, 1만원, 손양원]당시 손목사님의 한달 월급이 80원이었다고 합니다.

• 이렇게 감사가 습관이 된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든지 하나님께 영광돌릴 수 있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모든 일에 감사하라고 말씀합니다. 때때로 우리 삶은 힘든 시간을 보낼 수 있습니다. 그래도 우리는 감사할 충분한 이유가 있습니다. 주님의 은혜 때문입니다. 주님의 기대때문입니다. 하나님께 영광돌리는 길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주님께 우리의 시간과 물질을 드려 하나님께 감사하는 사람들이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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