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웃사랑축제
전도-새들백/릭워렌 - ‘믿는자들, 믿지 않는 자들이 한가지 공통점: 모두 전도를 싫어한다’
전도를 위해서 가지도 못할 뿐 아니라, 아예 전도자체는 나와는 상관이 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 여러분은 혹시 전도를 해보려고 하다가 절망을 느껴본 적이 있습니까?
신앙생활하면서 가장 어려워하고 절망감을 느끼는 것이 전도부분이 아닌가 싶습니다.
오늘 본문에도 어떤 일에 절망을 느꼈던 사람들을 보여줍니다.
• 본문 : 오늘 본문에 보시면 이 간질병에 들린 어린아이를 어떤 아버지가 데리고 예수님의 제자들을 찾아옵니다. 그리고 치유를 부탁했습니다.
18절.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제자들이 물론 열심히 노력을 했겠지요. 그러나 이 아이의 병이 도무지 고쳐지지 않습니다. ‘능히 하지 못하더이다’ 그들은 절망에 빠졌습니다.
• 특히 전도문제에 우리는 절망감에 빠질 때가 많습니다.
가족 중에 누군가의 구원을 위해 오랫동안 기도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배우자를 볼 때, 자녀들을 볼 때 우리는 인간적인 절망감을 느낍니다. 오랫동안 전도하려고 애를 썼는데 여전히 변화되지 않는 누군가 때문에 절망감을 느껴보신 적이 있습니까?
그러나 오늘의 본문은 예수님 안에서 불가능이 가능으로 바뀌어진 사실을 말해주고 있습니다. 우리는 영혼들을 주님께로 인도할 수 있습니다. 우리들을 통해서 구원의 역사가 일어날 수 있습니다. 우리를 통해서 가족들이 주님을 만나게 되는 역사들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이 기도하는 그 사람이 예수님의 사람으로 바뀔 수 있습니다.
• 어떻게 이런 일이 가능할까요?
1. 믿음의 시도가 필요합니다.
• 변화산 아래에서의 제자들의 절망. 예수님께서 이 상황을 보시고 제일 먼저 하신 말씀.
• 19절.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우리가 사람들이 예수님을 만나고 변화되는 것을 경험하지 못하는 첫 번째 이유는 우리가 믿음을 포기했기 때문입니다. 처음에는 열심히 가족의 구원을 위해서 열심히 기도했는지 모릅니다. 그러나 아무리 기도해도 응답이 나타나지 않는 것 같을 때 우리는 믿음을 포기합니다. 넘어설 수 없는 장벽이라고 생각합니다. 전도라는 것은 나와는 상관없는 일이라고 생각합니다.
우리가 내 이웃을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 믿음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어떠한 사람이라도 구원하실수 있다는 믿음을 우리가 포기했기 때문에 전도하지 못하는 것입니다.
여기서 믿음이라는 것은 내가 할 수 있다는 믿음이 아닙니다. 주님은 하실 수 있다는 믿음입니다. 한 사람이 예수 믿는 것은 기적입니다. 주님께서는 내가 포기한 그 사람을 변화시키실 수 있습니다. 제자들이 절망을 느꼈던 그 소년을 치유하셨습니다.
믿음이 없는 세대여 내가 얼마나 너희와 함께 있으며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믿음으로 응답하기를 기대했습니다. 그러나 여전히 믿음으로 응답하지 못하는 것을 보고 답답해하셨던 것 같습니다.
얼마나 너희를 참으리요? 주님께서는 우리들에게도 동일한 말씀을 하실 수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을 믿는다면 나를 전도의 도구로 사용하실 수 있다는 것도 믿으셔야 합니다. 주님이 나를 구원해주셨다는 것을 믿는다면, 하나님이 나 뿐만 아니라 다른 사람도 구원해주실 수 있다는 것도 믿으셔야 합니다.
• 본문/ 아이의 아버지/ 22절. ‘무엇을 하실 수 있거든....도와주십시오’
• 예수님/ 23절. 할 수 있거든이 무슨 말이냐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할 일이 없느니라
잘 믿어지지 않습니까? 그렇다면 주님께 이 아이의 아버지처럼 기도하십시오.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음을 도와주소서’
여러분 이 말씀을 믿고 나갑시다. 믿는 자에게는 능치 못한 일이 없다는 말씀을 믿읍시다. 나도 하나님의 전도의 도구가 될 수 있다는 사실을 믿읍시다. 우리가 전도하지 못하는 이유, 상황때문이 아니라 우리의 마음에서 포기해버렸기 때문일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으로 한번 도전해 보십시오. 이번 사랑의 축제에 한 영혼을 주님께 인도하겠다고 도전해보십시오. 그리고 하나님이 여러분을 통해서 하시는 일을 경험해 보십시오.
지난 주에 노벨상 수상이 있었고, 여기에는 일본 과학계에서만 3명의 사람이 노벨상을 받았고 우리의 부러움의 대상이 되었습니다. 과학적인 진보는 기존의 패러다임을 바꿀 때 획기적으로 변화하곤 했습니다.
1947년 10월 14일, 조종사 척 예거 (Chuck Yeager, 1923~)는 ‘보이지 않는 장벽’ 으로 알려져 온 음속의 한계를 돌파함으로써 마침내 초음속 비행의 시대를 열었다.
당시 과학계에서는 마하 1의 속도에서는 조종사와 비행기 모두가 산산조각날 것이라느니, 혹은 조종사는 목소리를 잃고 나이를 거꾸로 먹으며 또 극심한 충격을 받을 것이라는 등 섬뜩한 예견들을 하던 터였다. 그러나 예거는 그 역사적인 날 조금도 당황함이 없이 벨 항공(BeLL Aviation)의 X-1기에 탑승하여 시속 700마일(마하 1,06)로 비행하는 데 성공했다. 뿐만 아니라, 그는 3주 후 마하 1.35로 비행했고, 6년 후에는 다시 시속 1,612마일(마하 2.44)이라는 믿을 수 없는 속도로 하늘을 날았다.
깨뜨릴 수 없는 장벽에 대한 신화가 무너져 내리는 순간들이었다. 예거는 자서전에서 그 순간을 이렇게 회고했다. “속도가 빨라질수록 비행은 오히려 더 편안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마하를 가리키는 바늘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비늘은 마하 0.965에 도달했고, 곧 속도계의오른쪽 끝으로 기울었다. 나는 마치 환각을 경험하는 느낌이었다. 나는 그때 초음속으로 날고 있었다. 하지만 그 느낌은 어린애기의 엉덩이만큼이나 부드러웠다. 그런 편안함이라면 나이 든 할머니라도 거기에 앉아서 레모네이드를 즐길 수 있으리라! 나는 그야말로 어안이 벙벙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토록 염려하고 그토록 기뻐했건만, 막상 음속을 돌파하고 나니 오히려 실망스럽게 느껴졌다. 미지의 것이었던 음속의 장벽을 무너뜨리는 것은 실은 포크로 젤리를 가르는 것처럼, 마치 잘 포장된 도로를 달리는 것처럼 쉬웠다. 그러나 나는 훗날 그때의 임무가 왜 그렇게 실망스럽게 끝날 수밖에 없었는지를 깨달았다. 그건 진정한 장벽은 하늘에 있었던 것이 아니라, 초음속 비행에 관한 우리인간의 지식과 경험에 있었기 때문이었다."
• 여러분에게도 절대도달할 수 없다는 마하1의 속도는 없습니까? 나는 절대로 거기까지는 갈 수 없다. 내가 전도를 해? 그것은 절대로 상상할 수 없는 일이다... 이렇게 미리 포기해버렸다면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십시오. ‘주여, 내가 믿나이다 나의 믿음없음을 도와주소서.’
2. 기도로 하나님께 나아가야 합니다.
• 제자들의 질문/ 28절.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 내지 못하였나이까
• 예수님/ 29절.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느니라 하시니라”
귀신이 쫒겨나고 하는 일은 영적인 일입니다. 사람의 힘으로 어떻게 할 수 있는 일이 아닙니다. 전도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노력할 수는 있습니다. 찾아갈 수 있고, 교회를 소개할 수 있고, 간증할 수 있고 여러 가지 일을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결국 믿고 안믿고는 사람의 영역이 아닙니다. 성령으로만 거듭날 수 있습니다.
그러므로 이런 일을 기도외에는 방법이 없습니다.
• 우리가 왜 기도하지 않을까요? 교만하기 때문에 기도하지 않습니다.
내가 할 수 있는 영역이라면 우리는 절박하게 기도하지 않을 것입니다. 그러나 이 일은 내가 할 수 있는 일이 아니고 하나님이 역사해주셔야 하는 일이다고 믿는다면 우리는 기도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이 사건에서 믿음을 강조했는데, 우리가 정말 예수님을 신뢰한다면 기도할 것입니다.
• 마17:21
그런데 이 것을 비교하면 재미있어요. 똑같은 기사가 마태복음에도 취급되어 있는데, 마태복음 17장 21절을 찾아보시기 바랍니다. 한번 찾아보세요. 마태복음 17장 21절입니다. 웃는 사람은 빨리 찾은 사람이에요. 왜 그렇게 되어 있습니까. 마태복음 17장 21절을 딱 찾아보면 뭐가 나왔습니까. '없음' 이렇게 되어 있어요. '없음' 하하. 그러나 어떤 성경에 보면 우리가 쓰고 있는 성경은 다 사본인데 카피한 것인데, 어떤 사본에 보면 마태복음 17장 21절 없음 그러고 난외 주로 바깥에다 코멘트를 해 놨어요. 뭐라고 썼습니까. 기도가,
어떤 사본에 의하면, 기도와 금식이 아니고서는 이런 유가 나갈 수가 없느니라.
기도와 함께 뭘 강조했습니까. 금식. 기도만 강조하신 것이 아니라 금식까지 강조하신 것으로 되어 있어요.
금식은 무엇입니까. 기도의 가장 강렬한 형태가 금식입니다. 사람들이 집착하는 것, 하루를 살면서 절대로 빼놓지 않는 것, 그것은 먹는 일이죠. 그러나 그 식사 시간까지 단절하고 하나님께 매달린다. 기도의 가장 강렬한 형태가 바로 금식입니다. 기도와 금식은 이런 일을 가능하게 한다.
어떤 사람들이 종종 '목사님 저도 어려운 많아서 기도해 봤어요. 그런데 안돼데요' 제가 가끔 반문 합니다. 금식까지 해 보셨습니까. 한 두 번의 기도가 아니라 정말 간절히 매달리는 기도. 기도의 가장 간절한 형태가 있다면 그것을 우리는 금식이라고 할 수가 있습니다.
초대 교회의 능력이 어디에서 나왔을까요. 초대 교회의 능력. 기도의 능력입니다. 사도 행전에 나타난 초대 교회는, 초대 교회가 굉장히 이상적이 교회라 지금 현대 교회 보다 굉장히 우수한 어떤 교회라는 상상을 하지 마십시오. 우리와 똑같은 문제들이 있었습니다. 교인 숫자도 적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초대 교회는 당대의 세계에 그 세계를 흔들 수 있는 영향력과 충격을 가하고 있었습니다. 그 원인 어디에 있었느냐. 금식에 있었어요. 금식에. 사도 행전에 페이지마다 우리는 기도와 금식의 장이 없이 사도 행전의 페이지를 넘기지 못할 것입니다.
• 그래서 우리 교회에서는 이웃사랑축제를 열흘 앞두고 특별기도회를 갖기 원합니다. 여러분 할 수 있는대로 이 기도회에 나옵시오. 여러분 VIP 가 안정해지셨습니까? 그런 대상자를 보여달라고 기도하십시오. 찾으십시오 ‘구하라 그러면 구할 것이요, 찾으라 그러면 찾을 것이요, 문을 두르리라 그러면 열릴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의 VIP 명단을 교회에 제출해주십시오. 우리는 이들을 위해 계속 기도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기도와 금식외에는 이런 류가 해결될 수 없다는 것을 알기 때문입니다.
• 전도는 이웃을 위한 최고의 사랑입니다. 한 사람의 영혼을 영원한 지옥에서 천국으로 인도하는 사랑의 행위입니다. 그런데 기적이 필요합니다. 이 이웃사랑의 기적은 기도로 시작되는 것입니다.
뉴질랜드 오클랜드의 TABANACLE 교회.
설교의 황태자 찰스 스펄젼
스펄젼의 전기에 보면 이런 이야기가 나옵니다. 사람들이 스펼전 교회와 목사님을 방문하면 목사님은 항상 이 방문객을 데리고 교회 본당이 아니라 교회 아래층으로 데리고 갔데요. 그 아래층에는 기도하는 성도들이 많았습니다. 그 기도하는 성도들의 모습을 보여주면서, 자랑스럽게 보여주면서 스펄젼 목사님은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제 목회의 비밀은 바로 여기 기도하는 이 성도들입니다. 그들이 나의 힘입니다. 그들이 바로 우리 교회의 발전소입니다. 저들의 기도 때문에 오늘 우리의 교회는 존재할 수가 있습니다.“ 단순히 스펄젼 목사님의 탁월한 설교만을 하나님이 쓰신 것이 아니라, 그 기도하는 성도들을 통해서 그들은 한때 그 교회의 황금기를 누리고 영국을 변형시키는 변혁의 초점이었습니다. 그런데 스펄젼 목사님이 돌아가신 이후에 어떤 전기 하나를 읽어보니까 제 눈에 갑자기 최근에 그 생각이 났어요. 그래서 다시 그 전기를 읽어 보았어요. 스펄젼 목사님이 떠나간 후에 교회는 비틀거리기 시작합니다. 제일 먼저 심상치 않은 변화중의 하나가 기도하는 운동들이 없어지기 시작했어요. 기도하는 그룹이 없어졌어요. 저는 만약 기도하는 성도들이 기도로 지켰더라면 그 교회는 지금도 능력있는 사역을 계속 하리라고 믿습니다. 기도가 사라질 때 하나님은 영광을 그 교회에서 거두신 것입니다
3. 예수님의 은혜를 신뢰하셔야 합니다.
• 제자들은 믿음에 있어서, 기도에 있어서 실패했습니다. 우리들도 자주 실패합니다. 믿음이 약해지고, 기도가 중단될 때가 많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예수님께서 역사하셨다는 사실을 기억하십시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 주님은 우리에게 믿음을 요구하십니다. 기도를 요구하십니다. 그러나 때때로 우리의 모습은 주님이 원하시는대로, 기대하시는 대로 살지못하는 것이 우리의 모습입니다. 그렇다면 우리는 아무 것도 기대할 수 없다는 말씀입니까? 아니오. 여전히 희망이 있습니다. 예수님은 실패한 제자들에게 다가가셔서 이렇게 말씀합니다.
19절.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오늘도 주님은 동일하게 말씀합니다. 우리가 포기해버린 사람, 도무지 변화될 가능성이 없기 때문에 가능성이 없다고 생각한 바로 그 사람에 대해서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말씀합니다. ‘그를 내게로 데려오라’
그리고 주님께서는 제자들이 해결하지 못한 그 사건을 해결해주셨습니다. 이것이 주님의 은혜입니다.
• 기독교의 핵심은 은혜입니다. 우리가 부족하고 때때로 실수 하고 실패하는 사람이라도 그런사람들을 쓰신다. 이것이 은혜이다.
수많은 사람들이 실패하였고 결함을 지녔었다.
위대하다는 하나님의 종들도 마찬가지였다. 베드로는 주님을 부인했을 뿐 아니라 배반했었다. 성 어거스틴도 지워버리고 싶은 방탕한 과거가 있었다. 프란시스도 성자라 불리운 뒤에도 여자의 유혹으로 인하여 오랫동안 고뇌했었다. 성 쟌다아크도 처음에는 자기 주장을 철회했었다. 루터도 교황의 사형선고를 받고 문을 닫고 부들부들 떨었다. 한국 기독교계의 존경받는 원로 한경직 목사도 일제 (日帝) 때 신사(神社)를 참배했다.
오, 그런데도 예수님은 이들에게 기꺼이 당신의 일을 부탁하셨다. 우리는 모두 다만 하나님의 은혜로써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 이 풍성한 은혜가 우리에게 이웃사랑의 기적을 맛보게 하실 것입니다. 우리가 실패했을지라도, 주님께로 가지고 나가면 주님께서는 그런 우리들을 사용해주실 것입니다. 이것이 은혜로 우리는 이웃사랑의 기적을 맛볼 수 있습니다. 또한 이 은혜는 우리 뿐 아니라 이번 이웃사랑축제 가운데 사람들을 변화시켜주실 것입니다. 왜냐하면 주님의 은혜가 너무나 풍성하기 때문입니다.
아까 찰스 스펄젼 이야기를 했는데 스펄젼 전기에 이런 얘기가 있습니다.
찰스 스펄전이 주일 날 예배를 드리고 집에 가는 길이었습니다. 마차를 타고 템즈 강 다리 위를 지나고 있었습니다. 그때 문득 이런 생각이 들었습니다.
'아 ! 내가 템즈 강의 작은 물고기가 아닐까 ? 내가 이 물을 다 마셔버려서 템즈 강이 다 말라 버리면 어떡하지 ?' 그때 하나님이 그 작은 물고기에게 이렇게 말씀하시더랍니다. "마음껏 들여마셔라, 작은 물고기야.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
또 이런 생각도 들었습니다. '내가 애굽이 통치하던 시대의 작은 새앙 쥐가 아닐까 ? 내가 풍년이 들었을 때, 그 곡식을 이 새앙쥐가 조금씩 먹는데 이거 내가 다 먹어서 이 곡간이 텅텅 비면 어떡하지 ?' 그때 요셉의 소리가 들렸습니다. "마음껏 먹어라. 이 작은 새앙쥐야."
문득 '내가 등산하는 한 사람의 등산객이 아닐까 ?' 하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산의 공기가 너무 좋은데, 내가 호흡하다가 다 마셔 버려서 공기가 고갈되면 어떡하지 ?' 그때 하나님이 하늘을 열어 주시고 말씀하셨습니다. "마음껏 다 들여 마셔라, 작은 인간아. 내 은혜가 네게 족하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