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11. 1.

요3 16 가장 아름다운 선택


누군가 인생은 B와 D사이에 C와 같다. B는 Birth, D는 Death, 그리고 C는 Choice를 말한다. 즉 인생이란 태어나서 죽는 순간까지 계속되는 선택의 연속이라는 것이다. 어떤 선택은 후회가 없는 선택이 있고, 어떤 선택은 추한 선택도 있다. 그러나 어떤 선택은 참 아름다운 선택도 있다. 이웃사랑축제를 준비하면서 가장 아름다운 선택은 무엇일까 묵상해 보았다. 그리고 인생의 수많은 아름다운 선택 중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택이 있다면 어떤 것일까? 저는 요한복음 3:16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택들에 대해서 나누고자 합니다.

1.우리들을 사랑한 선택

●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 세상을 사랑하사... 이것은 우리들을 가리킨다. 하나님은 우리들을 사랑하기로 선택하셨다. 우리들은 하나님께 죄를 범했다. 하나님께 등을 돌렸다. 하나님이 필요없다고 생각했다. 마음과 생각에서 하나님에게서 떠났다. 하나님의 법을 어겼고, 하나님의 뜻을 거스렸다. 하나님은 죄를 미워하셨다. 죄를 용납할 수 없었다. 가장 손쉬운 해결책은 사람들이 죄를 범하였으므로 사람들을 끝장내 버리시는 것이다. 심판하고 파괴시켜버리면 되는 것이다.

● 그러나 하나님의 선택은 사랑이었다. 자신을 거스리고, 자신의 뜻을 저버린 사람들을 사랑하기로 선택하셨다. 사람들은 사랑받을 만한 존재들이 아니었다. 우리들은 죄로 말미암아 오염되었고, 더러워졌다. 우리들은 망가졌고 깨졌다. 그런데 그런 우리들을 사랑하기로 선택하셨다. 이것은 아름다운 선택인 것이다.

● 존 오트버그(John Qrtberg)는 그의 아름다운 책 「이유를 초월한 사랑」(Love Beyond Reason)에서 여동생의 봉제 인형 팬디에 대한 이야기를 한다.

● “그 인형은 탐스러운 머리를 잃었습니다. 팔 하나도 어디론가 사라졌죠. 말하자면 낡을 대로 낡은 헝겊쪼가리였습니다. 하지만 팬디는 여동생이 가장 좋아하는 인형이었다. 그래서 가족끼리 여름휴가를 보낸 후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팬디를 잃어버렸다는 사실을 깨달았을 때 오트버그의 아버지는 차를 돌려 캐나다로 되돌아갔다. 오트버그는 말한다. “우리는 서로 열렬히 사랑하는 가족이었습니다. 특별히 똑똑한 가족은 아니지만 서로에 대한 애정이 깊었지요. 그들은 호텔에서 종이에 씨여 세탁물 밑에 깔려 있는 팬디를 찾아냈다. “이제 막 세탁기로 들어가 운명을 다할참이었다." 가족들은 팬디를 왜 그토록 소중하게 여겼을까? 그 인형이 예쁘기 때문이 아니었다. 그것은, 오토버그의 어린 여동생이 그 인형을 몹시 사랑했기 때문이었다. “(내 동생을)사랑한다면 자연히 팬디도 사랑하게 될 겁니다. 그것은 하나님 아버지도 마찬가지다. 그분의 자녀인 우리는 흠이 있고 망가졌으며 구부러져 있을 때도 있다.

● 우리는 하나님의 봉제인형이라 할 수 있다. 망가졌고, 헤어졌고, 사랑받을 만하지 못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런 우리를 사랑하기로 선택하셨다. 우리를 사랑하기로 한 이 하나님의 사랑, 아름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 그런데 더 아름다운 얘기가 있다.

2.외아들을 준 선택

● 요한복음 3:16은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셨다고 한다. 이처럼 사랑하셨다는 것이 무엇인가? 그것은 그 뒤에 있는 말씀처럼 독생자를 주셨다는 내용이다.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서 하나 밖에 없는 외아들을 내어주셨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기 위해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으셨다.

● 사랑의 정도는 그가 치루는 값을 보면 알 수 있다. 그는 가장 소중한 것을 내어놓으셨다.

● 남태평양의 어느 한 섬에 조니 링고라는 사람이 있었다. 사람이 재빠르고 현명하기로 소문이 나서 주변 사람들이 일이 있을 때마다 조니 링고를 찾았다고 한다. 그러던 중 조니 링고가 결혼하게 되었다. 그 섬에서는 결혼할 때 여자 집에 암소를 한 마리 가져다준다. 신부 값이다. 암소 다섯 마리를 지불했다 하면 대단한 여자를 아내로 맞이하는 것이다. 그런데 조니 링고는 아내를 위한 지참금으로 암소 여덟 마리나 지불하였다. 그런데 신부되는 마리타는 오히려 볼품없는 여자였다. 깡말랐고 구부정한 자세로 고개를 숙인 채 다녔고, 못생긴 그런 여자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소 여덟마리의 가치가 되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 사람들은 조니 링고가 이번 만은 어리석은 짓을 했다고 수근거렸다. 그런데 그게 아니었다. 몇 년 후, 사람들 앞에 나타난 마리타는 너무나 매혹적인 여자로 바뀌었으며, 그 기품은 따를 사람이 없게 되었다. 마리타는 자기 남편이 자기를 소 여덟마리나 지불했다고 생각하면서 자신감을 가지게 되었고 점차 기품있는 여인으로 변화되었던 것이다.

● 우리는 어떤 면에서 마리타와 같다. 우리는 볼품없고 사랑받을 만하지 못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셨다. 우리를 사랑하시되 자기의 하나 밖에 없는 독생자를 내어주시기까지 사랑하셨다. 마치 우리를 구원하기 위해서는 아무 것도 아깝지 않은 것 처럼 독생자를 내어주셨다. 그분은 그분의 최고를 내어놓고 우리를 사랑하셨다. 그분의 최고를 내어놓고 독생자를 내어놓는 선택, 분명 아름다운 선택이 아닐 수 없다.

● 그래서 오늘 우리가 부른 찬송가처럼 그 크신 하나님의 사랑을 말로 다 형용할 수 없는 것이다. 하늘을 두루마리 삼고 바다를 먹물 삼아도 이 하나님의 사랑을 다 기록할 수도, 설명할 수도 없는 것이다.

...

● 그렇다면 이 감당할 수 없는 하나님의 사랑앞에 사람들은 어떤 반응을 보여야할까? 이 엄청난 하나님의 사랑 앞에 인간이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일까?

● 요한복음 3;16은 말한다. 인간의 가장 아름다운 선택은 믿음이라고 얘기한다. ‘하나님이 세상을 이처럼 사랑하사 독생자를 주셨으니 이는 저를 믿는 자마다...’ 성경이 우리에게 요구하는 것은 한가지이다. 바로 믿음이다.

3. 그를 믿는 선택

● 믿음이란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이다. 감사하면서 받아들이는 것이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시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고, 독생자를 주시기까지 나를 그렇게 소중히 여기신다는 것을 믿음으로 받아들이 것,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그것 뿐이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다른 것을 원하시는 것이 아니다. 다만 이 하나님의 사랑을 받아들이는 것, 성경은 이것을 믿음이라 말한다. 누군가 믿음을 <왕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거지의 손>이라 표현했다. 우리는 왕 앞에 선 거지와 같다. 왕이 거지에게 선물을 주고자 했다. 거지가 자격이 있어서도 아니요, 나라를 위해서 공헌을 세운 것도 아니다. 아무런 이유가 없는데도 왕은 거지에게 엄청난 선물을 주고자 했다. 왕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거지의 손은 깨끗하지 못한 손일 수 있다. 더럽고 추한 손일 수 있다. 그러나 용기를 내어 손을 내밀어 왕의 선물을 받아들이는 것, 이것이 믿음이다.

● 하나님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 우리를 이미 용서해주셨다. 독생자를 보내셨을 때 이미 용서하기로 한 것이다. 이미 용서를 결정하고 예수님을 보내셨다. 이미 용서해놓으시고 우리를 기다리신 것이다.

● 이것은 마치 탕자의 아버지와 같다. 성경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어떤 집에 아들이 둘이 있었는데, 둘째 아들이 집을 나갔다. 나갈 때 그냥 나간 것이 아니라, 아버지가 죽으면 제게 줄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해서 가지고 나갔다. 그리고 흥청망청 다 탕진해버렸다. 돈이 없으니까 남의 집 돼지를 치면서 나무 열매로 배를 채워야했다. 너무나 비참했다. 가만히 생각해보니까 자기 아버지 집 종들도 자기 보다는 낫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아버지에게로 돌아가기로 결심한다. 그래서 이 둘째 아들이 집으로 돌아오는데, 아직 집에서 멀리 있을 때 그의 아버지가 그를 알아보고 맨발로 달려가서 아들을 맞이한다. 아버지는 이미 용서해놓고 아들을 기다리고 있었던 것이다.

● 이 아버지의 사랑 앞에 아들이 보일 수 있는 최선의 선택은 무엇이었을까? 아버지가 준 재산을 다 탕진했으니까 어떻게든 내 힘으로 다시 일어날 때까지는 절대로 아버지께로 돌아가지 않겠다고 하는 것일까? 실제로 많은 종교인이 이렇게 생각한다. 자기 힘으로 뭔가를 하려고 한다. 자기가 저지른 짓을 자기가 만회해보려고 한다. 조금이나마 아버지가 기뻐할 만한 것을 가져가기 위해서 아버지께 돌아가는 시간을 늦추고 뭔가 아버지께 가지고 갈 선물이라도 준비해갈려고 한다. 내가 아버지를 위해서 뭔가를 했습니다라는 말을 할 수 있는 선물을 마련해가려고 한다. 그래서 사람들은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대신에 자기 힘으로 뭔가를 하려고 한다.

● 그러나 이 아들이 보일 수 있는 최선은 빨리 아버지께로 나가는 것이다. 있는 모습 그대로 나가는 것이다. 아버지의 용서를 믿고 나가는 것이다. 아버지의 사랑을 믿고 돌아가는 것이다.

● 그러므로 여러분, 하나님 앞에서 인간의 최선의 선택은 믿음이다. 믿음으로 아버지의 사랑을 받아들이라, 믿음으로 아버지의 용서를 받아들이라.

● 믿는 자에게 성경이 약속하는 것은 이것이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라’ 믿는 자에게 영생을 약속하신다. 이 땅에서 영원한 것은 아무 것도 없다. 모든 것은 다 사라진다. 우리의 젊음도 사라지고, 돈도 사라지고 명예도 사라진다. 이땅에 남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우리는 빈손으로 왔다가 빈손으로 가는 것이다. 풀처럼, 꽃처럼 잠시 피었다가 시들어버리는 것이 인생이다. 화살이 날아가듯이, 강물이 흘러가듯이 그렇게 빨리 지나가는 것이 인생이다. 시편기자는 인생은 입김이라 했고, 전도서에서는 안개라고 했다. 그리고 그 짧은 인생을 살면서 우리는 인생의 희노애락에 울고 웃는다.

● 분명한 것은 사람은 이것만을 위해서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는 것이다. 사람은 짧은 인생만을 위해서 창조된 것이 아니다. 인간은 영원을 위해서 창조된 존재들이다. 사람들은 영원한 목적을 위해서 지어진 존재이다. 영원을 위해서 지어진 존재는 결코 짧은 인생살이로 만족할 수 없다. 이 땅에 있는 것들이 아무리 좋은 것이 많이 있고 값나는 것들이 많이 있어도 결코 그것으로 만족할 수 있는 존재가 아니다. 스타크래프트를 경험한 사람은 결코 겔로그로 만족할 수 없다. 한국의 빠른 인터넷을 경험한 사람은 56k 모뎀으로 하는 인터넷으로 만족할 수 없다. 잘 차려진 일급 요리를 경험해 본 사람은 싸구려 샌드위치가 전부라고 말하지 않는다. 1급 휴양지에서 보내는 기쁨을 아는 사람은 동네 진흙탕에서 노는 재미에 만족하지 않는다.

● 사람은 이 땅의 그 어느 것으로도 영원히 만족할 수 없다. 이 땅에서의 모든 기쁨은 영생의 기쁨을 가리키는 표지판에 불과한 것이다. 분명 돈의 행복이 있고, 오락의 행복이 있고, 가정의 행복이 있고, 술의 행복도 있고, 취미생활의 행복도 있다. 그러나 이것들은 표지판에 불과하다는 것을 기억하라. 이것들은 잠시 기쁘지만 영원히 기쁘지 않다.

● 하나님은 영생을 약속하셨다. ‘저를 믿는 자마다 멸망치 않고 영생을 얻게 하려하심이라’. 이것이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는 것이다. 전도는 바로 사람들로 하여금 이 영생의 기쁨으로 안내하는 것이다. 그렇다면 사람들을 초청하고 주께 인도하는 것은 이 땅에서 가장 아름다운 선택인 것이다.

● 그래서 찬송가의 작시자는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찬270장)라고 하지 않았는가?

● 이 찬송가의 작시자 엘라이져 캐슬(Elijah Cassel)은 본래 의사였다. 그는 성공적인 의사요 평신도 지도자로서 자신의 직업의 장에서 모범적인 삶을 살고 그가 출석하던 네브라스카의 한 침례교회에서 모범적으로 봉사하던 그런 분이었다. 그는 특별히 전도에 특별한 사명을 느끼며 병원에서 많은 환자들을 전도하고 언제 어디서나 자신의 삶의 이유, 존재의 이유는 복음 전도라고 고백하는 그런 분이었다. 어느 날 그는 돈 버는 것보다도 전도 하시는 것이 그렇게도 좋으냐는 질문을 받는다. “그렇구 말구요. 결국 우리는 이 땅에서 나그네가 아닙니까. 나그네 인생에서 영혼 구원보다 더 가치 있고 고귀한 일이 어디에 있겠습니까. 전도는 천사도 흠모하는 일인데요” 옆에 있던 부인이 <천사도 흠모하는 일>이란 그 말에 감동을 받고 집에 돌아와 남편에게 그 말을 시로 쓰면 자신이 작곡을 하겠다고 말한다. 그의 부인은 본래 음악 전공자였던 것이다. 그래서 이 부부의 고백으로 탄생한 찬송이 바로 이 찬송가 508(270)장인 것이다.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우리가 힘써 일하세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 그런데 그의 나이 60을 넘기면서 그의 마음에 파트타임이 아닌 훌 타임으로 자신의 전 시간을 드려 복음을 전하고픈 불타는 마음을 견디지 못해 마침내 목회에 헌신하게 된다. 더 이상 돈은 못 벌고 인간적인 대접도 못 받게 되었지만 그는 너무 기쁘고 너무 감사해서 그의 첫 부임지인 콜로라도 덴버의 한 작은 침례교회에 목사로 부임하면서 이 부부는 취임 예배에서 취임사를 대신해서 이 찬송을 불렀다고 한다.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우리가 힘써 일하세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그런데 캐슬이 이 교회 목사로 부임한지 얼마 안 되어 부인은 불행하게도 교통사고로 세상을 떠난다. 누군가가 장례식에 와서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목사되신 것 후회가 안되시느냐고? 목사 안되시고 의사하셨으면 부인이 그렇게 빨리 가지 않으실수도 있는 것 아니냐고?” 캐슬의 대답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제 아내는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찬송을 작곡하면서 제게 이런 말을 했습니다. 나그네 인생 길에 행복한 전도자의 곁에 머뭄이 자기의 행복이라고. 혹시 자기가 먼저 이 세상을 앞서 가는 일이 있으면 난 변함없이 당신의 하늘의 응원자가 되어 함께 복음의 증인이 될 것이라고” 그리고 그는 부인의 장례식에서 다시 회중들이 이 찬송을 불러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 “우리가 지금은 나그네 되어도 화려한 천국에 머잖아 가리니 이 세상 있을 때 주 예수 위하여 우리가 힘써 일하세. 주 내게 부탁하신 일 천사도 흠모하겠네. 화목케 하라신 구주의 말씀을 온 세상 널리 전하세” 이것이 바로 사명자의 모습이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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